2022년 8월 4일 목요일

코로나 백신과 노시보 효과

고혈압으로 외래에 다니는 50대 남성이 진료실을 나가기 전에 머뭇거리다 걱정스런 말투로 묻는다. 

“한 달 전 코로나 백신을 맞고 나서부터 가슴이 답답해서 자꾸 심호흡을 하게 되네요. 백신 부작용으로 심장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요?”

요즘 진료실에서 종종 겪는 일이다. 코로나 백신이 심근염이나 심낭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뉴스가 보도된 뒤에는 이러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더 늘었다. 화이자, 모더나 백신과 같은 mRNA 백신 접종 후 실제로 심근염이나 심낭염이 생길 수는 있지만 30만 명당 1명 꼴로 극히 드물다. 물론 질문을 한 50대 남성의 심장은 멀쩡했다. 마찬가지로 진료실에서 가슴 답답함을 호소하는 이들 대부분은 심장에 문제가 없다. 그렇다고 이 환자들이 단체로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약에 대한 부정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경우 약의 효과가 적게 나타나거나 부작용이 더 많이 나타날 수 있다. 이를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라고 한다. 노시보의 어원은 라틴어로‘해를 끼치게 한다’라는 뜻이다. 다소 생소한 용어일 수 있지만 이와 반대되는 개념인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에 대해선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역시 '기쁨을 줄 것이다'라는 라틴어 플라시보가 어원으로, 의학적인 효과가 없는 가짜 약이나 치료를 받은 환자가 병세의 호전을 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위약(僞藥) 효과라고도 부른다.

노시보 효과나 플라시보 효과의 대표적인 사례는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수행하는 임상 시험에서 찾을 수 있다. 약의 효과를 확인하려 할 때 약을 먹기 전후만을 비교하면 질병의 자연 경과가 결과에 영향을 미쳐서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무작위 배정 임상 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이다. 환자를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신약과 위약(placebo)을 먹도록 배정하는 방법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약에 의한 효과나 부작용은 진짜 약을 먹은 환자에서만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실제 연구에선 위약을 먹인 그룹도 병세가 나아지거나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를 흔히 본다. 위약을 먹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변화는 플라시보 또는 노시보 효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새로 개발한 약이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위약의 효과를 확실히 뛰어넘는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플라시보 효과는 실제로 얼마나 흔할까. 질병에 따라 다르지만 위약으로 2-30퍼센트 정도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2011년에 최고 권위의 학술지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된 연구 결과를 보면 위약의 효과를 실감하게 된다. 하버드 의대 연구팀은 40여 명의 천식 환자들을 상대로 치료제와 위약의 효과를 비교했다. 진짜 천식 치료 흡입제, 가짜 흡입제(위약), 가짜 침 치료를 교대로 받게한 뒤 환자가 느끼는 증상(주관적 지표)과 폐기능 검사 결과(객관적 지표)가 얼마나 좋아지는지를 확인했다. 객관적 지표인 폐기능 검사 수치의 경우 진짜 흡입제를 썼을 때는 20퍼센트 좋아졌지만 가짜 흡입제나 가짜 침 치료를 한 경우에는 치료를 안 한 것과 같은 7퍼센트 호전에 그쳤다.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다.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인 증상의 경우 진짜 흡입제를 썼을 때는 50 퍼센트, 가짜 흡입제나 가짜 침 치료를 한 경우는 45퍼센트 좋아졌다. 진짜 치료든 가짜 치료든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인 증상은 똑같은 정도로 좋아진 것이다. (참고) 

이렇게 위약은 경우에 따라 실제 치료와 맞먹는 효과를 보이는데, 객관적인 질병의 경과보다는 환자의 주관적인 증상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가짜 약임을 알고 복용하는 경우엔 어떨까. 언뜻 생각하면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것 같은데, 관련 연구에 따르면 위약임을 알고 먹어도 증상이 나아질 수 있다. 플라시보 효과를 믿는 사람에게 이러한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다고 한다. 최근에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과 같은 첨단 장비를 이용해 뇌 어떤 부위의 활동이 플라시보 효과를 일으키는지에 대해서도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뇌과학 연구를 통해 이러한 효과를 일으키는 뇌 부위를 밝힐 수 있다면 이를 이용한 치료도 가능할 것이다.

노시보 효과도 플라시보 효과만큼 흔하게 나타날까. 영국 임페리얼 대학 연구팀은 고지혈증 치료제인 스타틴에 대한 임상 시험 부작용 사례를 분석해 2020년 같은 학술지에 발표했다. 스타틴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약 중 하나이나 근육 손상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복용을 중단하는 경우도 많다. 연구진은 60명의 환자에게 무작위로 스타틴이 든 병, 위약이 든 병, 그리고 빈 병을 한 달씩 교대로 나누어주고 복용하게 하면서 부작용을 관찰했다. 1년 동안 관찰한 결과 부작용 증상 점수는 스타틴이 16점, 위약이 15점, 빈 병은 8점이었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스타틴과 위약 간에 부작용 정도에 큰 차이가 없으며 스타틴 부작용의 90퍼센트가 노시보 효과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백신에 대해서도 비슷한 연구를 찾아볼 수 있다. 하버드 의대 연구팀이 코로나 백신 관련 열두 개의 임상 시험을 모아 재분석한 결과 위약(식염수 주사)을 접종한 대상자의 35퍼센트에서 두통이나 피로와 같은 부작용이 생겼다. 반면 진짜 백신을 맞은 군에서는 46퍼센트에서 부작용이 생겼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코로나 백신 부작용을 겪는 사람 네 명 중 세 명은 노시보 효과가 원인이 되었으리라 추정했다. 주사 전에 코로나 백신의 부작용에 대해 미리 안내하는데 이것이 부정적인 기대나 불안을 일으켜 노시보 효과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부작용의 경우 백신 자체보다 백신에 대해 가진 생각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백신 접종 시에 부작용에 대한 정보를 감추는 것은 윤리적이지 못하다. 대신 노시보 효과에 대한 정보를 함께 주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플라시보 효과에 대한 지식과 믿음이 긍정적인 반응을 더 일으키는 것처럼 불안과 걱정이 일으키는 노시보 효과에 대해 이해한다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백신을 맞은 뒤 생기는 증상이나 변화에 대해서도 좀더 차분하게 지켜보고 판단하게 될 것이다. 

일반 대중을 향한 정보도 중요하다. 노시보 효과를 피하려면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과도한 불안을 줄일 필요가 있다. 작년 코로나 백신 접종 초기에 혈전증 등 심각한 부작용 사례에 초점을 맞춘 언론 보도가 많았는데, 그에 반해 부작용의 객관적인 빈도와 과학적 근거를 균형 있게 다룬 기사는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과학적 근거를 담은 기사에 비해 부작용 사례에 대한 기사는 쉽게 관심을 끌고 독자의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우리에겐 특정 사건이 눈에 많이 띄거나 감정적으로 큰 영향을 받는 경우 해당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에 대한 견해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 현상을 심리학 용어로 현저성 편향(salience bias)이라고 한다. 대중은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한다. 객관적인 판단에 필요한 경험이나 정보가 부족할 경우 치우치게 받아들일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심각한 부작용만을 다룬 기사가 늘어날수록 백신 접종에 대한 판단에 부작용 사례가 많은 영향을 미치며 내가 그 사례가 될 수 있다는 믿음 역시 커진다. 이러한 부정적인 믿음은 노시보 효과를 통해 실제 부작용으로 나타난다. 

‘모르는 게 약이다’, 그리고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모순되게 들리지만 플라시보와 노시보 효과의 의미를 생각하면 두 속담 모두 맞는 구석이 있다. 아는 것이 힘이 되지만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었지만 세상의 이치는 다 알고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어디서든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고 소셜미디어나 유튜브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접하는 지금은 오히려 정보의 과잉과 잘못된 정보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차라리 모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아는 것은 힘이 되지만 잘못된 정보는 모르느니만 못하다. 그러니 ‘제대로’ 아는 것이 힘이다. 


참고문헌

Wechsler ME, Kelley JM, Boyd IO, Dutile S, Marigowda G, Kirsch I, Israel E, Kaptchuk TJ. Active albuterol or placebo, sham acupuncture, or no intervention in asthma. N Engl J Med. 2011 Jul 14;365(2):119-26.

Wood FA, Howard JP, Finegold JA, et al. N-of-1 trial of a statin, placebo, or no treatment to assess side effects N Engl J Med. 2020 Nov 26;383(22):2182-4.

Haas JW, Bender FL, Ballou S, Kelley JM, Wilhelm M, Miller FG, Rief W, Kaptchuk TJ. Frequency of Adverse Events in the Placebo Arms of COVID-19 Vaccine Trial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JAMA Netw Open. 2022 Jan 4;5(1):e2143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