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30일 목요일

손 저림의 원인에 대하여

손발 저림은 흔한 증상이다. 손발이 저리면 혈액 순환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혈관에는 동맥과 정맥이 있다. 동맥의 경우 동맥경화로 인해 혈관이 좁아지면 혈류에 장애가 생기고, 이때 나타나는 증상은 주로 통증이다. 해당 부위에 혈액이 많이 필요한 상황에서 동맥이 충분한 혈액을 공급하지 못하는 것이 통증의 이유이다. 평소엔 괜찮다가 일정 거리 이상을 걸을 때 종아리에 통증이 생긴다면 하지의 동맥 문제를, 숨찬 운동을 할 때 명치 부위에 통증이 생긴다면 심장 근육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 동맥이 좁아졌음을 의심할 수 있다.

큰 혈관이 아닌, 손가락이나 발가락의 말초 동맥의 경우엔 주로 추운 날씨와 같은 특정 상황에서 혈관이 과도하게 수축해서 통증이 생긴다. 추울 때 혈관이 수축을 하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이지만, 피부가 창백해지거나 통증이 생길 정도로 심하면 이를 레이노드 현상 (Raynaud’s phenomenon)’이라고 부른다. 찬물에 손을 담갔을 때 손가락의 혈색이 사라지면서 통증이 생기면 진단할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이 심하면 류마티스 질환이 원인일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단순히 손발이 찬 정도라면 추운 날씨에 피부의 노출을 피하고 모자, 장갑과 따뜻한 양말 등을 사용해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습관만으로도 증상을 줄일 수 있다. 반신욕이나 족욕도 도움이 된다.

정맥의 경우 혈관이 좁아지는 게 아니라 혈관 벽과 판막이 약해지는 것이 혈류 장애의 원인이다. 중력을 거슬러 심장으로 혈액을 되돌려 보내려면 혈관 벽의 탄력과 역류를 방지하는 판막의 역할이 중요한데 그 부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증상은 주로 부종으로 나타난다. 가장 흔히 나타나는 다리의 경우, 증세가 심하면 혈관이 튀어나오는 정맥류로 발전할 수 있다.

통증이나 부종과 같은 혈류 장애의 주된 증상 없이 손발 저림만 있다면 혈관보다는 말초 신경의 이상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오랫동안 바닥에 앉아 있었거나 엎드려 잠들었을 때 손발이 저리는 것은 말초 신경이 체중에 의한 압력으로 눌리면서 생기는 증상이다. 이 경우엔 자세를 바꿔 신경에 가해지는 압력이 사라지면 금새 나아진다. 하지만 만성적으로 신경이 눌리는 상황이라면 저림 증상도 사라지지 않고 반복해 나타난다.

손발로 내려가는 말초 신경의 뿌리는 척추에 있다. 척추의 뿌리에서 시작한 신경 줄기는 팔, 다리를 거쳐 잔 가지로 갈라지고 가지의 끝은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닿는다. 신경의 뿌리와 줄기, 가지 어디서든 눌릴 수 있다. 척추관 협착증이나 추간판(디스크) 탈출증이 신경 뿌리가 눌리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경추()에서 발생하면 팔과 손이, 요추(허리)에서 발생하면 다리와 발이 저리게 된다.

손 저림의 가장 흔한 원인은 신경 가지가 손목에서 눌리는 것으로, 손목 터널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손목 터널 증후군은 손바닥과 손끝이 저리고 밤에 저림 증상이 심해진다. 손을 많이 쓰는 경우에 흔히 발생한다. 집안일을 많이 하는 주부, 미용사, 피부관리사 등에게 많이 생기는 이유이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원인이 된다. 임신 중에도 몸이 붓고 손목 터널이 좁아져 더 잘 생긴다. 그 외에도 만성 신부전으로 투석을 받는 환자나 류마티스 관절염, 갑상선 기능 저하증, 당뇨병을 앓는 경우에도 흔히 발생한다.

이렇게 말초 신경이 눌려서 생기는 저림 증상은 대개 한쪽에만 생긴다. 만약 양쪽 손과 발이 동시에 저리다면 여러 신경을 함께 침범하는 전신 질환을 먼저 의심한다. 당뇨병성 신경병증이 가장 흔한 원인이다. 손발 저림이 뇌졸중(중풍)의 전조 증상이라 생각해 불안해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뇌졸중 때문에 저린 증상만 생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뇌졸중은 갑자기 발생하는 급성 질환이며 오랫동안 손발이 저리다가 발병하지는 않는다.

손목 터널 증후군의 치료 방법은 증세의 정도에 따라 다르다. 심하지 않다면 부목 기능이 있어 손목을 고정하는 보호대를 쓰게 하고 약물 치료를 한다. 손목에 스테로이드 주사 치료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치료 효과가 충분하지 않거나 손바닥 근육이 약해질 정도로 증세가 심하면 손목의 인대를 절제하는 수술 치료를 한다. 적절한 치료를 하면 대부분 나아질 수 있지만 증세가 오랫동안 진행될수록 치료의 효과는 덜하다. 그러므로 반복적인 손 저림이 있다면 혈액 순환을 좋게 한다는 은행잎 성분이나 마그네슘 따위를 먹으며 나아지길 기대하기보다 진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arpal_Tunnel_Syndrome.png


2022년 6월 29일 수요일

집에 가고 싶어

"아빠, 나 집에 가고 싶어."

밤에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는데 딸이 말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우리 집의 지 방 침대에 누웠는데 집에 가고 싶다니. 딸과 몇 마디 더 나누고서야 그 의미를 알았다. 

"지금 우리 집에 있잖아. 근데 왜 집에 가고 싶어?"

"내일이 주말인 집에 가고 싶어."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그날은 수요일 밤이었고, 다음날 아침엔 여느 때처럼 학교에 가야 했다. 아침엔 여러 번 깨워야 일어나고 주말엔 항상 늦잠을 자는 아이다. 다짜고짜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은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싫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그 뒤에도 딸은 종종 비슷한 말을 했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 앞엔 다양한 내용이 감추어져 있었다. 어떤 때는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집에 가고 싶었고 (드라마 보는 걸 좋아하는 딸을 말리지 않으면 매일 저녁마다 함께 넷플릭스를 봐야 한다), 또 어떤 때는 '맛있는 젤리가 있는' 집에 가고 싶었다 (집에 좋아하는 간식이 떨어졌을 때였다). 약속이 있어 집에 늦게 들어간 어느 날 밤엔 ‘아빠가 있는’ 집에 가고 싶디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네, 저는 딸바보입니다).

그러니 딸이 말하는 '집'이란, 닿을 수 없는 이상향. 유치환의 깃발에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 향한 '푸른 해원', 최인훈의 광장에서 명준이 선택한 '중립국', 이창동의 박하사탕에서 영호가 돌아가고자 했던 ‘순수한 과거’와 비슷한 존재였던 것이다. 매번 그 이상향의 모습이 바뀌긴 하지만. 

아빠는 내일 출근 안해도 되는 집에 매일 가고 싶단다. 

2022년 6월 11일 토요일

당뇨병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30세 이상 성인 일곱 명 중 한 명이 당뇨병 환자이며, 이를 전체 인구로 환산하면 494만명에 달한다. 국민 전체의 건강에 영향을 줄 만큼 흔한 질환이지만 당뇨병 환자 열 명 중 네 명은 스스로 당뇨병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을 정도로, 관리 수준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당뇨병을 진단받는 순간이 환자에겐 삶의 위기로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부정(denial)은 흔히 나타나는 반응이다. 당뇨병은 대개 서서히 진행한다. 대표적인 증상인 3다(多) 증상, 즉 다음(물을 많이 마시는 것), 다식(많이 먹는데 체중이 늘지 않는 것), 다뇨(소변 양이 많아지는 것)는 심한 당뇨병에서 나타나므로 초기 환자는 증상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당뇨병에 걸렸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부정은 정서적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적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분노, 죄책감과 우울 역시 당뇨병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정서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이러한 감정이 오래 지속되면 질병을 인정하는 수용(acceptance)의 단계로 나아가기 힘들다. 수용은 당뇨병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질병 관리를 위한 치료와 생활 습관 변화를 실행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전문가들은 당뇨병을 친구처럼 받아들이고 조급함 대신 멀리 보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건강하게 당뇨병을 관리하고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부정적 감정은 게으름이나 자기 관리 실패가 당뇨병의 원인이라는 편견과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편견은 자신이 당뇨병 환자임을 숨기게 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환자가 자신이 당뇨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기 꺼려한다. 하지만 당뇨병 관리를 위해선 식이 요법과 운동을 비롯해 생활 습관의 변화가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선 가정과 학교, 직장에서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자신이 당뇨병 환자이고 생활 습관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주변에 알리는 것은 성공적인 당뇨병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당뇨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