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8일 토요일

밤 열시, 은마아파트 사거리

누군가 밤 열 시경에 은마아파트 앞 사거리를 지나는 경험을 처음 한다면 아마 눈앞의 풍경에 놀랄 것이다. 밤 늦은 시간임에도 도로의 정체는 퇴근길 러시아워를 방불케 한다. 왕복 8차선 도로와 인도는 차량과 사람으로 가득하다. 보행 신호등이 켜질 때면 백 명은 족히 될 듯한 수의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빽빽하게 채운채 길을 건너는 진풍경도 볼 수 있다. 

술집 하나 없는 밤거리가 차량과 인파로 가득한 걸 보고 느끼는 놀라움은 뒤이어 의아함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편도 네 개의 차선 중 인도와 접한 차선은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메워져 있고 나머지 세 개의 차선엔 차량이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락션 소리는 뜸하기 때문이다. 옆 차선에서 무리하게 끼어드는 차량에도 대개 선뜻 양보를 한다. 몇 블럭 건너 테헤란로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클락션은 물론이고 욕설이 난무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선 교통 정리를 하는 모범운전자들의 호각 소리가 들릴 뿐이다. 

길을 걷는 이들은 대부분 앳된 얼굴의 십대들이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나이는 제각각이지만 모두가 큰 백팩을 매고 있다. 아이들의 옷차림새도 비슷하다. 무채색 계열의 겉옷을 입은 아이들은 사거리를 둘러싼 건물들에서 쏟아져나와 거리를 바삐 걷다가 정차된 승용차로, 버스 안으로 빠르게 사라진다. 삼십 분쯤 시간이 지나면 군중과 차량은 썰물처럼 사거리를 빠져 나가고 거리도 한산해진다. 

몇 달 전부터 일주일에 두어 번씩 아들을 데리러 이곳에 간다. 밤 열 시에 이 거리를 지나본 적이 없었기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나도 주변의 풍경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처음 몇 번은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뒷골목을 뱅뱅 돌아야 했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어느 골목에 빈 자리가 있는지를 대략 파악하게 되었다. 편의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차를 세우는 게 좋다. 대개는 간식으로 아들이 좋아하는 초코빵 같은 걸 가져가지만, 준비해가지 못하는 날엔 편의점에서 먹을 거리를 사야하기 때문이다. 

아들의 편의점 최애 간식은 스팸마요 삼각김밥이다. 그런데 학원에서 몰려나온 아이들로 북적이는 열시 십분 쯤 편의점 매대 삼각김밥 코너는 대개 텅 비어있다. 삼각김밥을 사지 못한 날은 아쉬운대로 핫도그를 산다. 계산을 하며 편의점 안을 둘러본다. 테이블은 컵라면을 먹는 아이들의 차지다. 자주 가다 보니 이제 익숙한 얼굴도 보인다. 처음엔 밤늦은 시간에 편의점 컵라면을 먹는 아이들이 좀 안돼보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지금 이 시간이 아이들에겐 나름 위안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비어있는 배를 채우든 마음을 채우든, 채울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니겠는가. 옆에 선 아재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든말든 아이들은 그저 컵라면과 삼각김밥, 닭꼬치와 핫도그를 꾸역꾸역 바쁘게 입에 넣는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내가 '대치동 라이딩'을 하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사교육에 열심인 편이 아닌데다 대치동이 상징하는 사교육 시스템의 꼭짓점을 바라보는 내 시선도 그리 곱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변엔 아이들이 커가면서 대치동으로 이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곳은 살고 싶은 동네라기 보다는 유익한 동네였고, 유익함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댓가는 컸다. 어떤 이는 대출을 받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멀쩡히 살던 자기 집을 두고 낡고 좁은 아파트 전세로 가기도 했다.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속으로 혀를 차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대치동을 통해 드러나는 날선 욕망을 은근히 폄하했던 것도 사실이다. 세상 물정 하나 모르고 그저 고고한 척 하는 선비처럼. 하지만 아들이 중학교에 가고, 입시 현실에 대해 좀더 알게 되면서 그런 생각도 좀 줄어든 것 같다. 대치동으로 이사를 가진 않았지만 라이딩을 하고 있으니 서투른 고고함도 절반쯤은 내려놓은 셈인가. 정지 신호에 줄지어 멈춰선 차량의 후미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거리 정지 신호로 서행하는 차선에서 검은 세단이 갑자기 앞으로 끼어들어서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한 차선을 더 건너가 비상등을 켜고 선 세단 옆으로 회색 후드티에 백팩을 맨 여학생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냉큼 올라탄다. 막히는 거리에서 클락션 소음이 뜸한 건 서로가 서로의 사정을 어느정도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뚤어진 것은 사회와 시스템이지 사람들이 아니다. 

수학 수업은 일주일에 세 번이다. 아들은 학원에 갈 때는 버스를 탄다. 밤엔 회의나 모임이 있는 날이 아니면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내가 데리러 간다. 셈을 해보니 그간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라이딩을 했던 것 같다. 집에서 은마아파트 사거리까진 이십 분 정도 걸리니 아주 먼 거리는 아니다. 라이딩이 힘들어 대치동으로 이사간다는 말도 있는데 내겐 그리 힘들지 않다.(물론 매일 라이딩을 해야 한다면 상황이 다를 것이다.) 오히려 조금은 즐겁고 설레기도 하다. 집에 오는 동안은 온전히 아들과 둘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차 안에선 평소에 듣지 못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새로 전학을 온 친구나 얼마 전 시작한 동아리 활동에 대해 들은 것도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였다. 어떤 날은 돌아오는 내내 별다른 대화 없이 아들이 선곡한 음악만 듣기도 하는데 그것도 좋다. 요즘은 학원 앞에서 함께 탕후루를 하나씩 사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1991년, 고등학교 3학년 일 년 동안 학교 기숙사에 있었다. 통학이 어려워서는 아니었다. 그때는 원하는 3학년을 대상으로 기숙사를 운영하는 지방의 고등학교들이 꽤 있었다. 요즘 학교 기숙사와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열악한 시설이었지만 공부에 집중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주중엔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토요일에 빨랫감을 싸들고 집에 갔다. 기숙사에 있는 다른 친구들은 주말이 되어야 부모님을 만났지만, 나는 매일 어머니를 만났다. 오후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어머니가 학교에 오셨기 때문이다. 휴대폰도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매일 같은 시간에 맞춰 어머니를 만나러 나갔다. 어머니는 항상 먼저 와 약속 장소인 운동장 구석에서 나를 반기셨다. 여름엔 토마토를 갈아 만든 쥬스를, 다른 계절엔 곰국을 보온병에 담아 오셨고 나는 화단을 둘러싼 큰 돌에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보온병에 담긴 내용물을 홀짝였다. 기껏해야 쉬는 시간 십여 분이 전부였지만, 어머니는 그 시간을 위해 매일 택시를 타셨다. 집에 자가용이 없던 때라 택시를 이용했고 혼자 왕복했다는 게 다를 뿐, 내 어머니도 수험생 아들을 위해 매일 라이딩을 하신 셈이다. 

얼마 전 아들과 집에 오는 길에 할머니의 라이딩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일 년 동안 매일 택시를 타고 학교에 왔다 가셨다고 하니 아들이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셨대?"

"그냥. 그게 할머니의 마음이셨던 거지." 

잠깐동안 말이 없던 아들이 한마디 했다. 

"조금 감동이네." 

그날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좋아하는 뉴진스의 신곡을 실시간으로 함께 들었다. 라이딩을 하다 보면 이런 소소한 즐거움도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반복해 노래를 들으며 아들과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아들은 곧 잊어버리겠지만, 내게 둘이서 처음으로 이 노래를 함께 들었던 기억은 오래 갈 것이다. 

삼십 년 전 무덥던 여름날, 보온병을 안고 에어컨도 시원치 않은 작은 택시를 타고 오면서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땐 몰랐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때 운동장 구석에서 어머니와 나눈 이야기들은 기억나지 않는다. 역시 특별한 이야긴 아니었으리라. 행여 수험 생활로 쌓인 짜증을 괜히 어머니께 쏟아놓거나 심통을 내진 않았을까. 그것도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어머니와 함께 했던 찰나의 시간들이 어머니에게도 설렘과 즐거움, 그리고 오래 되새길 수 있는 기억을 남겨드렸기를 바랄 뿐이다.

2023년 6월 11일 일요일

당신의 건강 문해력은 안녕한가요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를 달군 이슈 중 하나는 문해력에 대한 것이다. 작년에 있었던 ‘심심한 사과’ 논란이 그 예이다. 어느 웹툰 작가의 사인회를 준비하던 카페 측에서 예약 과정의 불편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는 글을 올렸는데, 일부 누리꾼들이 '마음의 표현 정도가 깊고 간절하다'란 뜻의 심심(甚深)이란 단어를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뜻으로 오해하고 사과에 성의가 없다며 주최측을 비난한 것이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디지털 세대의 낮은 문해력을 개탄하는 이들이 많았다.

해프닝 정도로 넘길 일이 논란이 된 이유는 이전에도 비슷한 일들이 있어서였다. 몇 년 전 영화 ‘기생충’ 개봉 당시엔 어느 평론가의 한 줄 평이 화제가 되었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라는 평에 대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겠다, 너무 현학적이다, 꼭 어려운 단어를 써서 잘난 체를 해야 하느냐며 SNS와 게시판을 통해 불만을 제기한 이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평론의 내용보다 단어의 어려움이 화제가 되는 상황의 배경에 낮은 문해력이 있다고 해석하는 의견이 많았다. 제작년엔 정치권에서 모 당대표가 다른 당의 대표에게 ‘무운을 빈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를 운이 없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하고 논평을 한 방송사 기자가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같은 해엔 ‘사흘’ 논란도 있었다. 토요일인 광복절부터 월요일 임시 공휴일까지 사흘 연휴가 이어진다는 신문 기사에 대해 순 우리말인 ‘사흘’의 뜻을 4일로 착각한 이들이 “3일인데 왜 사흘이라고 쓰냐”는 댓글 항의를 올렸던 것이다. 덕분에 ‘사흘’이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비슷한 사례로 모레 다음날을 의미하는 ‘글피’의 뜻을 모르거나 ‘금일’을 금요일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문해력, 영어로 리터러시(literacy)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위의 사례들은 단어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생긴 일들이지만,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되고 문장이 모여 단락과 맥락을 이루니 결국 이해의 문제는 단어에만 머물진 않을 것이다. 비슷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한국인의 낮은 문해력을 지적하는 의견이 단골처럼 등장한다. 문맹률이 낮기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글을 읽고 이해하는 문해력은 점점 나빠지고 있으며, 특히 청소년과 젊은 세대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반면에 일부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문해력이 낮다는 진단은 성인 중심의 시각이고 문해력 논란도 과장되었다고 반박한다. 요즘 세대가 영상과 멀티미디어에 대한 이해 능력은 훨씬 높으며, 디지털 시대에서 문자 위주의 텍스트를 이전보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문해력이 낮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오가는 요즘 아이들의 신조어를 외계어처럼 받아들이는 어른들을 보면 틀린 말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문해력 문제의 심각성을 보는 시각은 이렇게 관점에 따라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전반적인 문해력 수준이 과거에 비해 낮아졌다는 점에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것 같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와 같이 객관적으로 문해력을 평가하는 점수도 낮아지는 추세이다. 초중고 교사들 역시 학생들의 문해력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교과서나 긴 지문을 읽기 버거워한다는 것이다. 대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길고 복잡한 글의 맥락을 파악하고 글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글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는 강의가 보편화된지 오래이다. 서울대에서는 작년부터 전체 신입생을 대상으로 글쓰기 평가를 시행해왔는데 올해 시험의 경우 3명 중 1명이 미달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문해력과 관련된 논란이 반복되자 작년엔 대통령까지 나서 국무회의에서 “전 세대에 걸쳐 디지털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바야흐로 국민의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국가가 걱정하는 상황이 된 것인데,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 어린 백셩을 어엿비너긴’ 세종 시대 이후 육백 년 만의 일이 아닐까 싶다.

위에서 언급한 디지털 문해력은 스마트폰 등장 이전엔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이다. 과거엔 문자로 된 글을 두고 문해력을 이야기했지만, 요즘 문해력은 단순히 단어와 문장의 뜻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넓은 의미를 포함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문자 외에 이미지나 동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텍스트를 접한다. 그러다 보니 문해력도 컴퓨터 문해력, 미디어 문해력, 정보 문해력, 수 문해력, 과학 문해력 등 대상에 따라 다양하게 세분화된다. 이어서 이야기할 건강 문해력도 그 중 하나이다.

헬스 리터러시라고도 불리는 건강 문해력은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말한다. 건강 정보를 제대로 읽고 판단하지 못하면 자칫 건강에 해를 끼칠 행동을 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메탄올을 마시면 감염을 막을 수 있다는 가짜 정보가 돌면서 실제 메탄올을 마셔 전세계적으로 수백 명이 사망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감염을 예방한다며 신도들의 입에 소금물 스프레이를 뿌린 종교 시설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국제 기구와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일찍부터 건강 문해력 향상을 국가 보건 정책의 주요 의제로 채택하고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2021년 국내 성인 95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건강 문해력이 ‘적정’ 수준으로 나온 응답자는 전체의 50.6%, ‘경계’수준은 20.1%, ‘부족’수준은 29.3%였다. 자신에게 필요한 건강 정보를 적절히 찾고 이해할 수 있는 성인이 절반에 불과하다는 의미이다.(한국의료패널 부가 조사) 특히 고령자와 취약 계층에서 문해력 점수가 낮았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건강 문해력이 더 낮은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교육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교육부에서 성인 문해 교육 활성화 지원 사업을 하고 있고, 일부 지자체에서는 자체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아직까진 충분치 않지만 대통령도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지시했으니 앞으로 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런데 교육 외에 도움이 될 만한 다른 방법은 없을까.

고혈압으로 진료를 받던 환자가 있었다. 그는 서너 달에 한 번씩 진료실을 찾았고, 그날도 여느 때처럼 혈압을 확인하고 약을 처방하려는데 그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건강검진 결과를 받았는데 B형 간염 검사 항목에 이상이 있다는 것이었다. 결과지를 살펴보니 B형 간염 항원은 음성, 항체는 양성이었다. 문제될 것이 없는 결과라 뭐가 이상한지 되물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항체 검사 결과의 양성이란 단어를 보고 이상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오래 전 부친이 간경변을 앓다가 돌아가셨는데 자신도 B형 간염이 생긴 줄 알고 며칠 동안 속앓이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병원에 온 김에 검사를 다시 받아보려 했다는 것이다. 같은 양성이라도 항원과 달리 항체 양성은 면역이 있다는 뜻이며, 향후에도 B형 간염에 걸릴 위험은 없다고 설명하니 그제서야 얼굴빛이 밝아졌다.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었음은 물론이다.

B형 간염 항원과 항체 양성의 경우처럼, 양성(positive)과 음성(negative)은 검사 항목에 따라 긍정적인 결과가 되기도 하고 부정적인 결과가 되기도 한다. 같은 간염이라도 B형 간염은 ‘항체 양성’이 면역이 있다는 뜻이지만 C형 간염에선 반대로 병이 있어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더 나아가면 ‘악성(malignant)’의 반대말인 ‘양성(benign)’도 있다. 악성 종양, 양성 종양이 예이다. 양성이란 단어만큼 흔히, 그리고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의학 용어도 없을 것이다. 이쯤 되면 일반인 입장에선 헷갈릴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덕분에 그나마 ‘검사 양성’의 의미를 알게 된 사람이 많아지긴 했다. 하지만 건강 검진 결과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양성’의 의미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헷갈리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악성의 반대말이라도 다른 용어를 사용했다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종종 느낀다. 애초에 더 나은 용어를 썼다면 좋겠지만, 당장 용어를 바꿀 수 없다면 그 의미를 좀더 자세히 설명해야 할 것이다.

전 국민이 건강 검진을 받게 되면서 과거엔 의사의 설명을 통해서만 듣던 검사 결과를 직접 접하게 되는 일도 많아졌다. 의료진의 설명 없이 달랑 결과지만 받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다 보니 검사 결과에 이상이 없는데도 괜한 걱정을 하거나, 반대로 이상이 의심되는데도 꼭 필요한 후속 검사나 진료를 받지 않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사실 많은 검사 결과가 담긴 결과지를 혼자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직장인 1000여명에게 조사한 결과 건강 검진 결과지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답한 응답자가 71%나 되었다고 한다.(2020년 리치플래닛 조사) 수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는데다 어려운 전문 용어가 많아 검사 결과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건강 검진 결과에 대해 의사의 설명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건강 검진 결과지는 일반인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친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문해력을 높이는 교육은 중요하다. 하지만 건강 정보의 경우엔 그보다 먼저 국민의 문해력 수준에 맞는 정보를 만드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건강 검진 결과지도, 온라인 건강 정보도 보다 친절해질 필요가 있다.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포털이나 대학 병원 홈페이지 등 정확한 정보를 담은 플랫폼은 이전보다 늘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 담긴 정보들은 여전히 어려운 구석이 많으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 정확하고 어려운 정보보다 부정확하고 쉬운 정보가 대중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참고

한국인 '건강 문해력' 어느 정도?…"성인 절반만이 '적정' 수준"

https://www.yna.co.kr/view/AKR20230304027400530

"직장인 71%, 건강검진 결과지 충분히 이해 못 해"

https://ebn.co.kr/news/view/1027995

 

2023년 5월 13일 토요일

ChatGPT, 유튜브, 건강 정보

챗지피티(ChatGPT)가 화제다. 미국의 스타트업 기업 오픈에이아이가 개발한 대화형 인공지능 챗봇으로, 지난해 11월 출시 후 겨우 두 달 만에 사용자 수가 1억명을 넘겼다고 한다. 이 챗봇에 대한 뉴스 기사, 책, 논문이 쏟아지고 있다. 인기를 넘어 가히 열풍이라 불릴만하다. 어마어마한 양의 자료를 학습한 덕분에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이 특징인데, 기껏해야 단답형이나 정형화된 답변 정도를 할 수 있는 기존의 챗봇과는 달리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다. 이전 대화 내용을 기억해 맥락을 이해할 수도 있고, 질문을 그저 알아듣는 수준이 아니라 웬만한 전문 영역에서까지 그럴듯한 답을 내놓아 기존의 챗봇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경험을 선사한다.

나도 챗지피티와 몇 번 대화를 나눠보았다. 중학생 아들에게 적당한 생일 선물을 알려달라고 하니 게임 콘솔, 자전거, 악기, 책, 스포츠 용품 등을 추천했다. 십대 남자 아이를 위한 무난한 답변인데, 아이의 관심사와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는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러닝할 때 들을 한 시간짜리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에는 스무 곡짜리 리스트를 뚝딱 내놓았다. 이중 몇 곡은 내 스마트폰의 리스트에도 추가해 종종 듣고 있다.

조금 더 전문적인 요구도 해보았다. 미국, 영국, 한국의 의료 제도를 비교해달라는 요청에 한 장 남짓 분량의 요약문을 깔끔하게 만들어냈다. 리포트를 보니 무턱대고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세 나라 제도의 특성과 핵심을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인 예시를 포함해 이천 단어 분량으로 좀더 긴 글을 요구했다. 그러자 미국의 경우엔 오바마 케어를 둘러싼 논란을, 영국의 경우엔 관절 치환술과 같은 수술을 받기까지의 오랜 대기 기간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한국에 대해선 코로나 팬데믹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배경에 고유의 의료 제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학부 리포트 정도론 충분한 수준이었다. 온라인에선 챗지피티를 사용한 이들의 경험담이 넘쳐난다. 논문 초록이나 서론을 특정 저널의 형식에 맞춰 그럴듯하게 작성해 주더라는 후기도 찾을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교육계와 학계에서도 챗지피티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과제에 챗지피티를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인공지능 활용에 대한 지침을 마련한 학교가 늘고 있고, 네이처나 사이언스와 같은 유명 저널은 챗지피티를 저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임상 의학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최근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서는 챗지피티 활용에 있어서 장점과 한계에 대한 특별 기고를 발표하기도 했다.  

챗지피티는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에 속한다. 챗지피티 열풍의 핵심은 이용자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이 생성 능력에 있다. 하지만 놀라운 능력 이면에는 그림자도 있는데, 바로 ‘환각(hallucination)’이라 부르는 문제다. 인공지능이 모르는 질문에 대한 답변도 아는 척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이다. 세종대왕이 맥북 프로를 던진 사건에 대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알려달라는 황당한 질문에 실제 한글 창제 과정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라고 답을 한 사례는 유명하다. 현재 한국 대통령을 묻는 질문도 환각의 대표적인 예다. 2021년 자료까지만 학습한 챗지피티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함에도 종종 틀린 답을 천연덕스럽게 내놓는다. 

이러한 사례를 고려하면 아직까지 챗지피티를 정보 검색 용도로 쓰기엔 한계가 있어 보이지만, 언젠가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검색이 대세가 될지도 모른다. 최근엔 마이크로소프트가 챗지피티의 최신 언어 모델 GPT-4를 탑재한 새로운 빙을 내놓고 구글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구글도 생성형 인공지능을 이용한 검색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하니 두 공룡 기업의 싸움이 어떻게 진행될지 흥미롭다. 두 기업의 생성형 인공지능 중 어느 쪽이 승자가 될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검색 시장에서 구글의 영향력이 더 강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바로 유튜브 때문이다.

작년에 아들의 자전거를 새로 사면서 자전거를 자주 타는 동료에게 자전거 모델 추천을 부탁했다.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던 그가 말했다. “유튜브도 한번 찾아보세요. 요즘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아서 유튜브에 정보가 다 있습니다.” 유튜브로 검색을 한다고? 검색 하면 자연스레 구글이나 네이버를 떠올리는 나로선 낯선 경험이었다. 그런데 찾아보니 실제 유용한 정보가 많았다. 요즘 유행하는 자전거 모델, 자전거를 살 때 주의할 점, 구입 후기와 사용기 등 초보에게 필요한 콘텐츠도 충분했다.

직접 검색을 해보니 왜 유튜브를 이용하는지 이내 알 수 있었다. 동영상은 텍스트나 이미지에 비해 이해하기 쉽고 기억에도 오래 남았다. 자전거를 고를 때만 그럴까. ‘강남역 맛집’, ‘부산 여행’, ‘스파게티 만들기’ 등의 검색어를 입력할 때 네이버나 구글, 그리고 유튜브 중 어느 쪽이 더 생생한 정보를 줄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자. 제품 사용기, 여행기, 요리, 맛집 후기 등 사용자 경험에 기반한 정보라면 동영상이 주는 장점이 클 것이다. 영화나 미술, 게임과 같은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이다. 유튜브에는 신작 영화나 게임 스토리를 요약한 십여 분짜리 영상이 넘쳐난다. 젊은 연령일수록 유튜브를 더 많이 이용한다고 하니 유튜브의 영향력은 점점 커질 것이다.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중학생 내 아들만 해도 검색을 위해 초록색 테두리 창이 아닌 붉은색 유튜브 아이콘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검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 중에 건강에 대한 내용을 빼놓을 수 없다. 의료는 전문성이 높고 학문의 발전 속도가 빨라 공급자와 소비자 간에 정보의 비대칭이 가장 심한 분야이다. 환자 입장에선 이 의사의 말이 맞는지 틀린지, 이 병원과 저 병원 중 어떤 병원이 더 나은 진료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진다. 미국의 조사에 따르면 환자 네 명 중 세 명이 자신의 질병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온라인 정보를 이용했다. 최근 국내 조사에서도 국민 열 명 중 일곱 명이 인터넷을 통해 건강 정보를 얻는다고 답했다(과기정통부 2021년 인터넷이용실태조사). 이는 팬데믹을 거치며 크게 증가한 수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건강 정보를 찾지만 막상 그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지 판단하기란 역시 어렵고 잘못된 정보를 만나는 경우도 많다.

국가 기관이나 대학 병원의 정보라면 대개 믿을만하지만 난이도가 문제이다. 건강 정보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헬스 리터러시(health literacy)라고 하는데, 2020년 조사에서 적정 수준의 헬스 리터러시를 지닌 사람은 우리 국민의 29.1%에 불과했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건강 정보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 수준이 낮은 만큼 정보의 내용도 이에 맞추어야 하겠지만 그게 만만치 않다. 

몇 년 전 질병관리청의 국가건강정보포털 원고를 집필한 적이 있다. 국민에게 질병이나 증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웹사이트로, 유용한 정보가 많다. 이 포털의 원고 집필 지침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초등학교 고학년 눈높이에 맞추도록 하는데 이렇게 쓰는 것이 보통 고민스런 일이 아니었다. 의학 용어 하나, 표현 하나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써야 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집필진이 비슷한 고민을 했겠지만 정보들이 이용자의 눈높이에 충분히 맞추어져 있는지는 의문이다. 전문가라 해도 의학 지식의 양과 그 지식을 일반 대중에게 전달하는 능력은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텍스트 형식에 비해 동영상은 쉽고 친근하며 정보 전달력도 높다. 이런 장점은 딱딱한 의학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빛을 발한다. 이러한 이유로 건강 정보를 검색하는 플랫폼으로서 유튜브의 역할도 점점 커지고 있다. 유튜브의 인기가 높다 보니 학회, 대학 병원은 물론 웬만한 종합 병원들도 홍보와 정보 전달 목적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 의사 중에서도 유명 유튜버가 많다. 비의료인이 운영하는 구독자 수십만의 채널들도 있다. 그렇다면 이들 채널의 정보는 얼마나 정확할까. 

캐나다 연구진에 따르면 코로나 19 관련 인기 있는 유튜브 컨텐츠를 분석한 결과 27.5%가 잘못된 정보를 담고 있었다. 국내 연구에서도 통풍에 대한 유튜브 컨텐츠를 검토한 결과 10개 중 3개의 컨텐츠가 잘못된 정보를 주거나 개인적 경험을 전달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유용한 컨텐츠의 대부분은 통풍과 관련된 학회나 전문의가 제작한 것이었고, 반면에 비전문가의 컨텐츠는 잘못된 정보를 담은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영상에 대한 선호도는 정보의 정확성 여부와 관련이 없었고, 조회 수는 부정확한 컨텐츠가 오히려 높았다. 이 경우 검색 결과 부정확한 정보를 만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유튜브 검색 알고리즘은 정확성보다는 컨텐츠의 인기나 과거 시청 패턴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가짜 건강 정보를 피하기 위한 팁을 몇 가지 소개한다. 일단 의사가 만든 동영상을 선택하면 비교적 안전하다. 더 깐깐하게 고르자면 의사 개인 채널보다는 병원이나 학회의 채널이 낫다. 의사라고 해서 모두 맞는 말만 하진 않기 때문이다. 의사가 아닌 기타 무슨무슨 전문가나 박사 등의 채널은 적당히 거른다. 건강기능식품 쇼핑몰을 함께 운영하는 채널은 피하는 게 답이다. 추가로 ‘이것만 하면 된다’, ‘이건 큰일난다’거나, ‘무조건’, ‘반드시’ 등의 단어로 확신을 내뿜는 제목은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한 장치일 뿐이니 내용을 기대하지 말 것.

챗지피티에서 환각 현상과 같은 오류는 시간이 가면서 줄어들겠지만 유튜브에서 엉터리 건강 정보를 만나는 일이 줄어들지는 의문이다. 건강 정보의 경우 어느 영역보다도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격차가 큰데다, 유튜브 컨텐츠 생산자의 수입은 정보의 질이 아니라 구독자와 조회 수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정확한 내용보다 구독자의 관심을 끌 만한 내용의 정보가 많이 만들어지고 유통될 수밖에 없다.

부정확한 정보가 문제가 되면서 유튜브에서는 의사들이 만든 컨텐츠를 상단에 배치하는 등 나름의 대응책을 마련해 왔다. 최근엔 대학 병원 중심으로 인증 기관을 선정하고 신뢰도가 높은 컨텐츠를 우선 노출시키는 ‘유튜브 헬스’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한다. 일단 환영할 일이지만 문제가 해결될지는 모르겠다.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 조회 수를 올릴 수 있는 내용의 컨텐츠가 수익을 올리는 구조는 그대로일 테니 말이다.


참고문헌

Osman W, Mohamed F, Elhassan M, Shoufan A. Is YouTube a reliable source of health-related information? A systematic review. BMC Med Educ. 2022 May 19;22(1):382. 

Koo BS, Kim D, Jun JB. Reliability and Quality of Korean YouTube Videos for Education Regarding Gout. J Korean Med Sci. 2021 Nov;36(45):e303.

‘의료 괴담’은 그만…유튜브, 의학 콘텐츠 인증제 도입

https://www.hani.co.kr/arti/economy/it/1077061.html

2023년 4월 6일 목요일

러닝 일기

러닝을 한 지는 꽤 오래 되었다. 이전엔 트레드밀을 이용했다. 실외 러닝을 시작한 때는 코로나가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던 해였다. 일주일에 한두 번, 집을 나서 한강을 건너 돌아오는 4킬로미터 남짓 코스였다. 그때는 강 위를 달리는 순간이 그저 마음에 들었을 뿐이고, 속도나 기록에 대해선 신경쓰지 않았다.

미국에서 보낸 한해 동안엔 좀더 자주 뛰었다. 집에서 출발해 집 근처 공원을 돌고 돌아오곤 했다. 공원을 몇 바퀴 도느냐에 따라 거리가 달랐다. 짧게는 2마일, 길게는 3마일 정도의 코스였다. 뛰다 걷다 하는 식으로 산책하듯 했으므로 3마일이라 해도 그리 힘들진 않았다.

지난해 한국에 돌아와 몇 개월 동안엔 운동을 하지 못했다. 여름이 되면서 다시 러닝을 시작했다. 집에서 출발해 성내천 뚝방길을 두 번쯤 왕복하면 딱 3킬로미터가 나왔다. 두어 달쯤 그렇게 하다 보니 거리를 좀더 늘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뚝방길은 한강 공원까지 이어져 있다. 그곳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로, 조금씩 거리를 늘려 가을쯤엔 6킬로미터까지 뛰곤 했다. 거리가 늘다 보니 10킬로미터를 뛰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거리에 대한 목표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역시 기록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땐 킬로미터당 6-7분 정도의 스피드로 달렸던 것 같다. 

그러다 11월에 갑상선 항진증이 찾아왔고, 운동을 할 수 없는 컨디션이 되었다. 약을 먹으며 갑상선 호르몬 수치가 안정이 될 때까지 두어 달 동안 러닝도 쉬었다. 올 초에 다시 운동화를 신고 늘 뛰던 길에 나갔을 때는 체력이 작년보다도 못하게 회귀한 상태였다. 3킬로미터를 뛰는데도 힘에 부쳐서 허덕거렸다. 그래도 한달 정도 지나니 다시 안정이 되었고, 지난 달부턴 다시 거리를 늘려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목표였던 10킬로미터까지 늘려보기로 했다. 내친김에 속도도 좀더 높여보면 어떨까. 킬로미터당 6분 이내 까지는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10킬로미터를 6분 페이스로 달리면 1시간이 걸린다. 1시간 내에 10킬로미터를 완주하는 것이 목표였다. 러닝에 익숙한 이들에겐 별것 아닌 기록이겠지만, 그동안 10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뛰어본 적도 없었던 내게는 쉽지 않은 숫자였다.

그리고 어젯밤, 그동안 생각만 했던 목표에 다다랐다. 



2023년 3월 4일 토요일

영화 '다음 소희'를 보았다.

일주일 전 나는 베를린에 있었다. 베를린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모두가 한 번은 들른다는 브란덴브루크문 광장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옛 동독의 영토였던 광장에서 프로이센군의 개선문이었던 브란덴브루크문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은 뒤 광장 옆의 홀로코스트 기념물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식 명칭은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로, 높이가 다른 직육면체 돌들이 빽빽이 들어선 공간이다. 돌들은 마치 관이나 비석처럼 보여서 중앙의 키보다 높은 돌들 사이를 지날 때는 압도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느낌은 유대인 학살의 기록으로 가득한 지하 기념관을 둘러보는 내내 이어졌다. 거리로 나와 바깥 공기를 쐬고서야 답답함을 떨칠 수 있었다. 이월의 바람이 아직 찼다. 우울한 기운을 내치듯 일부러 크게 심호흡을 했다.

기념관의 남쪽 경계는 한나 아렌트 거리라 이름붙은 길이다. 나치를 피해 고국인 독일을 버렸던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을 통해 악인은 생각보다 평범하고 흔히 행하는 일도 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웠다. 그는 "그런 악한 행위는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못한 데서 나온다"고 했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비판적 사고가 없다면 상황에 따라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평론가 신형철이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서 썼던 다음의 문구도 비슷한 깨달음을 준다.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깨닫게 될 것이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현장 실습생의 사망 사건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가장 최근은 2021년 여수에서 요트 바닥 청소를 하던 고등학생이 익사한 사건이었던 것 같다.(기사를 찾아 연도를 확인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기 전엔 현장 실습을 둘러싼 문제를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저 일부 업체의 문제 정도로 생각하고 아이의 죽음을 적당히 안타까워 하며 넘겼을 뿐이다. 영화를 보고서야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대부분의 사고가 그렇듯, 문제는 구조적이고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현장 실습생을 저렴한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회사, 실습을 보내는 데만 급급한 학교, 평가를 소홀히 한 교육부, 관리 감독을 외면한 고용노동부 모두가 가해자였다. 하지만 등장 인물 중 누구도 대단한 악인이라 할 만한 사람은 없다. 모두가 평범한, '복잡하게 나쁜' 사람들이다. 콜센터는 실적을 이유로, 교육부와 학교는 취업률을 이유로 아이들을 구석으로 내몰았다. 사실 이런 건 우리 모두에게 퍽 익숙한 평가 잣대들 아니던가. 책임을 묻는다면 모두가 그저 자기 일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항변할 것이다.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따져 묻는 형사에게 교육부 장학사는 이것이 현실이라고, 벽면 가득한 취업률 평가 도표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적당히 좀 하십시다."

영화를 보며 소희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는 어른이 없었다는 점이 가슴 아팠다. 부모, 선생님, 회사 상사, 어느 누구도 소희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나 회사 그만둘까, 하는 소희의 말은 부모 앞에서도 혼잣말이 될 뿐이다. 아이의 말을 들어준다고 현실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누군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꽃같은 아이의 죽음은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소희의 옆엔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들만으론 부족하다. 정글같은 사회를 살아내려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어른이 꼭 필요한 것이다.

얼마 전 김장하 선생의 다큐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반면에 나는 살면서 무엇을 했는가 하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했다. 법적으로 어른이 된 지 삼십 년이 되었지만 다큐를 보는 내내 내가 어른이란 확신이 들지 않아 자괴감도 들었다. 선생의 발끝을 따라가기도 어려울 것이나, 그래도 내 입장에서 어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곳에서,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어른의 역할을 조금은 할 수 있겠다는. 그리고 어른을 필요로 하는 순간과 장소를 지나치거나 외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겠다는. 애쓰지 않는다면 금새 잊을 것이다. 나 역시 복잡하게 나쁜, 평범한 사람일 뿐이니.

콜센터 근무 환경이나 현장 실습생 제도의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조금은 변화도 있었다.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려는 어른들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부족한 걸로 보인다. 아이들의 죽음은 해를 거르지 않고 반복된다. 그러니 소희가 일했던 콜센터가 지금도 어디에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영화를 보고 일주일 전 베를린에서의 시간을 떠올리게 된 건 홀로코스트 기념관 안에 적혀있던 문구 때문이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의 말이 그것이다.

"It happened therefore it can happen again: this is the core of what we have to say."

2023년 3월 2일 목요일

음식은 약이 아니다

오십대 남자 환자에게 검사 결과를 설명하던 중이었다. 혈당 수치 오른쪽에 정상 범위보다 높음을 의미하는 붉은색 화살표가 선명했다. 

“혈당이 높습니다. 작년보다 더 높아졌어요. 지금 수치는 당뇨병에 해당합니다.”  

공복 혈당 장애라 불리는 당뇨병 전 단계에 접어든 지도 벌써 몇 년 되었으니 당뇨병을 조심하라는 이야기도 되풀이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도통 처음 듣는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뇨병이 온 건 아니겠지요?”

일찍이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다섯 단계 감정을 차례로 겪는다고 했다. 죽음의 경우만큼 강렬하진 않겠지만 만성 질환을 처음 진단받은 환자도 비슷한 감정의 수순을 거친다. 지금은 그중 첫 번째인 부정 단계라 할 수 있다. 환자들은 대개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는 그와 눈을 맞추고 천천히 설명했다. 

“아뇨. 당뇨병이 온 겁니다. 이제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미죠.”

“제 가족 중에 당뇨병 환자도 없는데 왜 저만 당뇨병이 생겼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의 언성이 약간 높아졌다. 두 번째, 분노의 단계다.

“유전적인 원인 외에도 다른 여러 원인들이 있고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내게 왜 당뇨병이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요. 사실 지금은 왜 당뇨병에 걸렸는지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럼 이제 약을 먹어야 하나요? 당뇨병 약을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한다고 들었는데요.”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죠. 하지만 당뇨병 초기이고 심하지 않은 상태니 먼저 생활 습관을 바꿔서 조절해 봅시다. 변화가 없으면 약을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침울한 표정을 짓던 그가 조금은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뇨병을 처음 진단받은 환자 대부분은 평생 약을 먹기를 부담스러워 한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그럼 당뇨병이 생기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요?”

우울과 타협 단계. 다섯 단계 감정이 반드시 순서대로 찾아오지는 않는다. 중간 단계를 건너뛰기도 하고 타협을 했다가 다시 분노 단계로 돌아가기도 한다. 지금은 잠시 앓고 지나갈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 병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자연스레 마지막 단계인 수용에 이를 것이다. 그때까지는 해야할 일을 구체적으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

“운동은 걷기를 하고 계시니 조금 더 늘려보지요. 속보로, 숨이 차고 땀이 날 정도로 강도를 높여서 빨리 걷는 게 좋습니다. 매일, 최소한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은 해야 합니다.”

“펜을 빌릴 수 있을까요?”

모니터 옆 철제 펜꽂이에서 볼펜을 꺼내 환자에게 건넸다. 그는 혈당 검사 수치 옆에 방금 들은 말을 기록했다. 반듯한 글씨였다. 나는 그가 기록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다음은 체중 감량입니다. 한 달에 일 킬로그램씩. 석 달에 삼 킬로그램만 줄여보세요.”

그는 선생님의 강의를 요점 정리하는 학생처럼 볼펜을 부지런히 놀렸다. ‘체중 줄이기, 3킬로 / 3개월’이라 적고 앞쪽의 숫자 3에 동그라미를 두 번 그렸다. 

“마지막으로 식단입니다. 체중을 줄이려면 무엇보다 먹는 양을 줄여야 합니다. 지금 먹는 양에서 삼분의 일을 덜어내고 삼분의 이만 먹는다고 생각하세요. 단맛이 나고 당분이 많은 간식은 피하되, 무엇보다 골고루 드시는 게 중요합니다.”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가 정중하게 물었다. 나는 설명을 멈추고 그의 질문을 기다렸다. 그의 얼굴에 기대 섞인 표정이 떠올랐다. 다음에 이어질 질문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뭘 먹으면 혈당이 내려갈까요? 당뇨병에 도움이 되는 식품 같은 게 없을까요?”

슬픈 예감은 항상 틀린 적이 없다. 이 질문은 만성 질환 환자와의 대화 중에 주로 타협 또는 수용 단계에서 등장한다. 내게는 어렸을 적 그림책에서 보았던 전래 동화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그 이야기를 떠올렸다. 

옛날 어느 마을에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자가 있었다. 추운 겨울날, 어머니가 딸기를 먹고 싶다고 했다. 엄동설한에 딸기가 있을 리 만무했지만, 딸기를 먹으면 병이 나을 것 같다는 어머니의 말에 효심이 깊은 아들은 딸기를 구하기 위해 눈 덮인 산을 올랐다. 추위를 무릅쓰고 산 속을 헤매던 효자 앞에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그를 등에 태우고 딸기가 있는 곳에 데려다 주었다. 아들이 구해온 딸기를 먹은 어머니는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이야기는 여러 버전이 있어서 어떤 때는 효자가 효녀로, 호랑이가 산신령으로, 딸기가 봄나물이나 홍시로 바뀌기도 한다. 그래도 주된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호랑이를 감동시킨 효심은 놀랍지만 효심에 대한 설화는 많기에 이 이야기가 특별하진 않다. 내가 이 이야기를 떠올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음식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이 흥미로워서이다. 한해 동안 병치레를 피하기 위해 대보름날에 오곡밥이나 부럼을 먹던 풍습을 보면 음식이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한다는 개념이 꽤나 오래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래 전 약도 의학 지식도 부족했던 시대엔 음식과 약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았다. 당시엔 풀뿌리를 빻거나 나무 열매를 달여서 약으로 쓰기도 하고, 관절이 아픈데 좋다는 음식을 기침이나 두통에 쓰기도 했을 것이다. 우연이든 아니든 이렇게 만든 약을 먹고 어떤 이의 병세가 좋아졌다면 그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거나 책으로 쓰이기도 했을 것이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말이 있다. 약과 음식은 그 근본이 동일하다는 뜻으로, 기원전 중국 진한 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 의서 <황제내경>에 적힌 말이라 한다. 그러니 음식으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은 예수의 탄생만큼이나 오래된 셈이다. 조선 선조 때 허준이 집필한 <동의보감>에서도 같은 말을 찾을 수 있다. 중국과 한국 등 동양 의학에선 체질과 음식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해서인지 음식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개념도 일찍부터 더 깊게 뿌리내렸던 것으로 보인다.(서양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는 설도 있지만 출처가 확실치 않다.) 쑥이나 냉이, 도라지, 더덕 등의 식재료는 한약재로도 알려져 있다. 심지어 이런 약재를 넣어 담근 술도 약(藥)주라고 부른다. 

음식과 관련된 믿음은 지금도 흔하다. 가끔 가는 동네 콩나물국밥 집 벽엔 메뉴판과 함께 염증을 억제하고 대사를 촉진한다는 콩나물의 놀라운 효능에 대한 설명이 걸려있다. 어떤 질병이든 좋다는 음식이 있다. 책이나 방송은 이를 되풀이해 재생산한다. 고향을 소개하는 다큐에서도, 자연인이 등장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도 어느 병에 좋다는 음식을 만들고 먹는 모습은 빠지지 않는다. 오죽하면잘 먹고 잘 사는 법이란 이름의 프로그램도 있었을까. 요즘은 유튜브가 한몫 한다. 조회수를 위한 자극적인 제목은 필수이다. 어떤 음식은 먹으면 큰일날 것처럼, 또 어떤 음식은 안 먹으면 큰일날 것처럼 말한다. 이 과정에선 종종 식품의 종류보다 구체적인 개별 식품이 강조된다. 그냥 채소보다는 브로컬리가, 그냥 견과류보다는 브라질너트가, 그냥 가금류보다는 오리고기가 특효라고 콕 집어 이야기하는 식이다. 당뇨병을 예로 들면 여주, 돼지감자, 노니, 누에 등, 스테디셀러만 해도 여러 가지이다. 다들 각각은 흠잡을 데 없는 음식이지만 따로 찾을 만큼 병을 치료하는 특출난 효과는 없다. 하지만 음식점 벽 메뉴에서까지 음식의 효험에 대한 과장된 설명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보니 진료실에선내가 어디가 안 좋은데 뭘 먹어야 좋아지느냐는 질문도 흔히 접한다. 건강기능식품의 과도한 인기 이면에도 음식이 약이 된다는 믿음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음식은 건강에 중요하다. 하지만 음식으로 모든 병을 치료할 수는 없다. 당뇨병과 같은 만성 질환 관리에 있어 식이 요법은 약물 치료 못지 않게 중요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식이는 개별 음식 한두 가지가 아니라 다양한 음식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식단 전체를 의미한다. 기존의 잘못된 식단은 그냥 두고 특정 음식만 더해 먹는다고 마법같은 변화가 생기진 않는다. 또한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그 음식만 과하게 먹으면 균형이 깨지거나 영양실조가 생긴다. 그러니 내 답을 기대하는 환자에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뇨병에 특효인 식품 같은 건 없습니다. 음식은 약이 아니에요.”

2023년 1월 24일 화요일

중용을 지키는 건강 습관

<논어(論語)> 선진편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성어가 있다. 자공이 공자에게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더 현명한지 묻자 공자는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고 답했다. “그럼 자장이 더 낫다는 뜻입니까”라 다시 물었고 이에 대한 공자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논어와 더불어 사서에 속하는 <중용(中庸)>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오는데 ‘지혜로운 자는 지나치고,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한다.’라고 했다. 중용은 군자의 예(禮)로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대지 않고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이 한결같은 마음을 의미한다. 

옛 현인들의 말씀 중에 틀린 게 없다는 걸 종종 깨닫는다. 나이가 들수록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중용의 삶에 대한 동경은 커진다. 하지만 그 실천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해가 갈수록 더 깊이 실감하게 된다. 공자는 세상을 살면서 지켜야 할 도리로 중용을 말했지만 중용의 이치는 사람의 말과 행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갖춘 생리 기능도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한결같이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체온은 36-37도 가량을 유지하고 안정 시에 심박수는 60에서 100회 사이에 있다. 굶거나 과식을 해도 건강한 사람의 혈당은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고혈당과 저혈당을 일으키는 당뇨병에서 볼 수 있듯이, 중요한 생리 기능과 관련된 수치가 지나치거나 모자란다면 대개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이다. 병원의 전자의무기록은 혈액 검사 결과에서 지나치거나 모자란 수치에 붉은색 화살표를 붙여 표시해주는데, 환자의 검사 결과를 열었을 때 붉은색이 보이면 순간 긴장하게 되고 반대의 경우엔 마음이 편안해진다. 공자가 인체의 생리 기전을 알았다면 적정 범위의 검사 결과를 유지하는 것 또한 예(禮)라 칭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실없는 생각도 해본다.

건강과 관련된 생활 습관에서도 중용의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은 식습관이다.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생활 습관으로 식습관과 더불어 흡연, 음주, 운동, 수면 등이 흔히 꼽힌다. 모두가 다 중요하지만 건강한 식습관을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본다. 담배와 술은 피할 수록 건강에 좋고, 수면이나 운동의 경우엔 부족했을 때가 문제다. 애초에 답은 한쪽 방향으로 명확하게 정해져 있으니 어떤 게 좋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알고 있는 정답을 실천하기 어려울 따름이다. 하지만 음식이나 영양소의 경우엔 지나쳐도 문제, 모자라도 문제이다. 중용을 지키는 식습관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건강에 이롭거나 해롭다는 음식은 수없이 많아서 골라 먹기가 쉽지 않다. 건강에 좋은 음식이나 식단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은 없을 것이나, 무엇을 얼마만큼 먹어야 할지 모르니 다른 생활 습관과 달리 일단 정답부터 고민이다. 적당히 먹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고 하지만 그 ‘적당히’의 기준도 음식에 따라, 영양소에 따라, 내 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지니 더 어렵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중용의 실천은 우선 매일 먹는 음식의 양에서 시작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음식의 열량이다. 내게 필요한 적절한 열량은 기초 대사량과 활동에 의한 대사량을 합친 것과 같은데, 여러 계산 방법이 있지만 대개 하루에 여성은 2000칼로리, 남성은 2500칼로리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운동량이 많거나 몸을 많이 쓰는 일을 하는 등 신체 활동량이 많다면 이보다 더 많은 열량을, 반대로 주로 앉아서만 생활하는 사람은 더 적은 열량을 필요로 한다. 하루이틀 폭식을 한다고 체중이 쉽게 늘진 않지만 내가 필요로 하는 열량보다 더 많이 먹는 습관을 오랫동안 유지하면 체중이 늘어 비만으로 이어지게 된다. 반대로 필요한 열량보다 적게 먹는 습관을 유지하면 체중을 줄일 수 있다. 보통 다이어트 식단에서 하루 1500-1800칼로리 정도를 처방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내가 하루에 먹는 음식의 열량이 궁금하다면 스마트폰을 이용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식단 분석 기능을 갖춘 애플리케이션만 해도 수십 종류이다. 먹은 음식을 기록하면 열량뿐 아니라 영양소별 섭취량까지 분석해준다. 식사를 일일이 기록하기 번거롭다면 음식 사진만으로 분석을 해주는 애플리케이션도 있으니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식단 전체의 열량을 확인했다면 다음은 개별 영양소를 돌아볼 차례이다. 우리가 살아가려면 뇌와 장기의 활동, 근육의 움직임을 위한 연료인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에너지를 생성하는 영양소는 3대 영양소, 흔히 탄단지라고 부르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은 1그램에 4칼로리, 지방은 1그램에 9칼로리의 열량을 만들어낸다. 비타민, 미네랄과 같은 영양소에 비해 섭취량이 많아 이들을 다량영양소(macronutrient)로 분류하는데, 이들 영양소에 대해선 에너지 적정 비율(acceptable macronutrient distribution ranges, AMDR)을 두고 있다. 총 에너지(열량)에서 해당 영양소가 차지하는 비율의 적정 범위를 말하며, 탄수화물 55-65%, 단백질 7-20%, 지방 15-30%이다. 이 수치는 범위를 벗어났을 때 만성 질환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들을 기반으로 정해졌다. 세 영양소 간의 비율과 균형이 깨어지면 문제가 생긴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해야 하니 여기서도 중용의 이치가 적용된다 하겠다.

한국인의 일반적인 식단은 대개 이 적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2020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전체 열량에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은 60:16:24로 적정 범위 내에 있었다(그림). 하지만 이는 평균 수치일 따름이며 모두가 적절히 먹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적정 범위를 넘어서 지나치거나 모자라게 먹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세 영양소의 비율은 특히 나이에 따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노인 연령에선 탄수화물 섭취가 늘고 단백질과 지방의 비율이 줄어든다. 낮은 가계 수입, 사회적 고립, 건강 문제 등으로 다양한 음식을 준비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노인의 식단이 단순, 빈약해지는 건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문제로 서양에선 이를 ‘tea and toast syndrome’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밥, 국, 김치와 밑반찬 등으로 식사를 때우는 경우가 많다. 육류나 생선이 없으므로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이 된다. 실제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도 60세 이상에선 탄수화물의 비율이 65%를 초과하고 70세 이상이면 더 높아진다. 이렇게 탄수화물 비율이 너무 늘면 대사증후군, 당뇨병 등의 위험이 커진다. 근육량 유지에 필요한 단백질 섭취가 줄어 노인의 근감소증 위험도 높아진다. 

그림. 한국인의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섭취 비율 변화
(2011-2020 국민건강영양조사)

지방 섭취가 많은 서양 기준에서 보면 한국인의 식단은 저지방, 고탄수화물 식사에 해당한다. 하지만 한국인의 탄수화물 섭취량은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이다. 10년 전에 비하면 탄수화물의 비율이 5퍼센트 정도 줄었다(그림). 탄수화물 섭취 비율이 낮아지면 자연스럽게 단백질과 지방 비율이 높아지는데, 이러한 변화는 젊은 연령층에서 더 뚜렷하다. 특히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포화 지방의 섭취량이 젊은 연령에서 빠르게 늘고 있다. 노인의 경우는 탄수화물 과잉과 단백질 섭취 부족이, 청년층에선 단백질과 포화 지방 섭취 과잉이 빈번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서구식 식생활로의 변화와 더불어 체중 감소 목적의 저탄수화물 식단이 유행해온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동안 인기를 끌었던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단은 단기적으론 체중 감량에 효과적이나 포화 지방의 섭취가 지나치면 나쁜 콜레스테롤이 높아지는 이상지질혈증과 심혈관 질환의 위험이 높아지게 된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적정 비율을 지켜 먹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다. 식품군에 따라 곡류, 고기와 생선류, 채소류가 하루 식사에 골고루 포함되도록 한다. 적당한 양을 먹으려면 식사를 천천히 하고, 한끼를 과하게 먹었다면 다음 끼니는 다소 모자란 듯 먹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려서부터 내 어머니께서는 늘 골고루 적당히 먹는 게 좋다고 하셨는데,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도록 하라는 공자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군자의 예를 체득하는 것이 어디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던가. 이번 설 명절에 친가에 갔을 때도 팔순이 가까운 노모께서는 당신 말씀과 달리 끼니마다 음식을 지나치게 차려 주셨다. 음식 맛은 두말해 무엇하랴. 매번 과식을 하고 말았으니, 중용의 실천이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참고문헌

* Oh SW. Current status of nutrient intake in Korea: focused on macronutrients. J Korean Med Assoc. 2022 Dec;65(12):801-809.


2022년 12월 23일 금요일

기술의 발전을 생각하다.

최근 갑상선 기능 항진증 진단을 받았다. 갑상선에서 호르몬을 과하게 만들어내는 병이다. 평소보다 피로가 심해 검사를 했지만 과로 때문으로 생각했고, 채혈을 할 때까지만 해도 솔직히 호르몬 수치에 이상이 있을 거라 예상하진 않았다. 다른 증상들을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갑상선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체중이 줄고 심박수가 빨라지며 숨이 차거나 손이 떨린다. 불면증을 겪기도 하고 설사와 같은 위장 증상이 생기기도 한다. 몇 시간 뒤 확인한 갑상선 호르몬 수치는 정상 범위보다 훨씬 위쪽에 있었다. 그제서야 최근에 증상이 있었던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체중이 1-2킬로그램 정도 줄긴 했다. 평소보다 잠을 설쳤던 것도 같고, 짜증이 늘고 신경이 날카로워졌던 것이 과도한 호르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갑상선 이상을 의심하지는 못했으니 아내가 검사를 받아보라고 재촉하지 않았다면 증상이 더 심해진 뒤에야 발견했을 지도 모른다. 진료실에서 익숙한 질병임에도 막상 내 문제는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 처방전을 챙겨 퇴근을 준비하는데 아이폰 건강 어플리케이션의 알림이 떴다. 애플 워치와 연동된 스마트폰은 가끔 건강 관련 지표의 추세 변화를 알려준다. 대개는 걷기, 운동량, 소비 칼로리 등에 대한 것이고, 지난 달에 비해 걷기 양이 줄었다며 가벼운 경고를 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번엔 처음 보는 내용이었다.

‘지난 5일 동안 휴식기 심박수가 평균적으로 늘었습니다.’

그래프는 최근 닷새 동안의 분당 심박수가 늘었음을 보여주었다. 큰 변화는 아니었다. 겨우 10회도 안 되는 변화였고 정상 범위를 벗어나지도 않았다. 그러니 스스로 느낄 정도는 아니었으리라. 그렇지만 스마트폰은 그 미묘한 변화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갑상선 이상을 진단받은 날에 알림이 온 것은 그저 우연일 수도 있지만 조금은 놀라웠다.


겨우 분당 69회에서 77회로의 변화였다.

심장 박동에 이상이 생기는 병인 부정맥을 진단하는 표준 검사는 24시간 심전도(홀터 검사)이다. 이 검사는 장비를 받고 반납하는 과정에서 병원을 방문해야 하고 검사 하는 날은 샤워나 운동 등 일상 생활에도 제약이 있어 여러모로 번거롭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부정맥의 속성상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최근엔 가슴에 붙여 일주일 이상 심전도를 측정할 수 있는 작은 패치 형태의 기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그리고 편하게 측정 가능한 방법일수록 심장 박동의 변화를 발견해내기에 용이하다. 심전도 측정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 워치가 등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마트 워치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부정맥을 직접 발견한 환자의 사례는 이제 흔한 뉴스가 되어 버렸다. 심지어 수십만 명을 대상으로 애플 워치와 핏빗의 심방세동 진단 기능을 확인한 연구가 각각 NEJM과 Circulation 저널에 발표되기도 했다. 조만간 심장 박동을 읽는 기능에 관한 한 디지털 기기가 의사의 진단을 대체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며칠 전엔 디지털 기기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볼 계기가 있었다. 고혈압 환자에게 생활습관 관리에 대해 설명하면서 저염식을 권하자 환자의 아내가 잘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염도 측정기 이야기를 꺼냈다. 사나흘에 한 번씩 남편의 소변을 받아 염도를 측정한다는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싱겁게 먹기 위해선 우선 내가 얼마나 짜게 먹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지만 사람의 입맛엔 차이가 있어 스스로 정확히 알기 어렵다. 싱겁게 먹는다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흔하다. 이러한 이유로 병원에서는 환자의 24시간 소변을 모아 나트륨 함량을 측정한다. 섭취한 나트륨의 대부분은 소변으로 배설되므로 이는 싱겁게 먹는지 묻는 것보다 훨씬 정확한 방법이다. 하지만 일상 생활을 하면서 하루 동안 소변을 모으기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염도 측정기는 소변을 받아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 훨씬 간편한데다 매일의 식단에 따른 변화까지 알 수 있다. 앞의 환자의 경우에도 외식을 한 다음날엔 매번 소변의 염도가 높아져서 되도록 집에서 밥을 먹는다고 했다. 내가 먹는 음식에 따른 소금 섭취량 변화를 곧바로 파악할 수 있으니 저염식을 실천하는 데 이보다 좋은 방법이 있을까. 

나중에 검색을 해보고 염도 측정기 종류가 제법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스마트폰과 연동이 되는 제품도 보였다. 대개는 음식의 염도 측정에 쓰이지만 소변의 염도를 측정하는데 활용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진료실에서 이런 환자를 만난 건 처음이었기에 저염식을 위한 노력을 칭찬하고 격려해야 마땅했지만 사실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순간 머리 속에 염도 측정을 하는 일련의 과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컵에 샛노란 소변을 받아 조심스럽게 측정기를 담그는, 약간은 민망한 그 광경이. SF 영화 ‘아일랜드’의 첫머리에는 주인공이 소변을 보자 곧바로 변기 위의 스크린이 나트륨 과다를 경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언젠가는 이렇게 염도를 분석해주는 변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된다면 고혈압 환자들은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자연스레 전날 먹은 소금의 양을 알게 될 것이고, 나도 민망한 광경을 떠올리지 않고 소변의 염도를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불안 때문에 검사를 자주 받기도 한다. 일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고 유방외과를 다니는 내 환자 한 분은 다른 병원에서도 추가로 두세 달마다 초음파 검사를 받고 있었다. 최근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검사를 너무 자주 받을 필요 없다고 충고했는데, 내 말이 유난스런 행동을 나무라는 듯이 들렸는지 그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나는 환자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려주지 못한 데에 미안함을 느껴야 했다. 그가 다음과 같이 말했기 때문이었다.

“불안하니까요. 마음 같아선 집에다 기계를 두고 매일 검사하고 싶어요.” 

물론 암 수술을 받은 환자라 해도 매일 검사를 받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의 바램과 같이 환자 스스로 스캔할 수 있는 기기가 나올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게 검색대를 통과하거나 거울 앞에 서는 것처럼 간단하고 손쉬운 방법이라면, 매일 검사를 받지 않는 것이 오히려 유난스럽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주, 그리고 스스로 검사할 수 있는 기기라면 연속혈당측정기를 빼놓을 수 없다. 손가락 끝을 침으로 찔러 혈액으로 검사하는 기존 방법은 통증과 번거로움으로 검사 횟수에 한계가 있다. 반면 팔뚝에 붙이는 이 조그만 기기는 피부 아래 삽입된 센서를 통해 혈당 수치를 5분마다 자동 측정해 스마트폰에 전송하고, 이를 통해 환자는 일상 생활에 따른 혈당의 변화를 즉각 알 수 있다. 혈당을 많이 올리는 음식이나 운동의 효과를 실감하게 되어 자연스레 생활 습관의 중요성도 깨닫는다. 연속혈당측정기는 국내외 당뇨병학회의 진료 지침에도 포함될 만큼 효과를 입증했다3). 측정기를 처음 시험 삼아 사용했을 때 나는 하루 열 번 이상 혈당 수치를 확인했다. 예전이라면 그만큼 손가락을 찔러야 했겠지만 이 기기라면 몇 번을 확인하든지 스마트폰을 팔뚝에 살짝 대기만 하면 된다. 현재는 1-2주 동안 사용하는 제품이 대세지만 6개월까지 사용할 수 있는 이식형 제품도 개발되었으니 앞으로 편의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눈부시다. 손가락만 대어도 심전도를 그려내는 시계와 실시간으로 혈당을 기록하는 측정기는 그 자체로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기술이 만들어낸 진정한 성취의 지점은 의료 소비자와 공급자 간의 관계와 역할의 변화에 있다. 병원을 방문하고 의사를 만나야 가능했던 많은 일들이 이제 환자 손에서 이루어진다. 의료 공급자에게 쏠려있던 헤게모니는 점점 소비자인 환자에게로 이전될 것이다. 일찍이 미래 의학 전문가 에릭 토폴은 “The doctor will see you now. (의사 선생님께서 지금 진료해 주실 거에요.)”란 말은 미래에 “The patient will see you now.”로 바뀔 것이라 했다. 이 전망은 지금도 유효하다. 하지만 이러한 미래가 언제 실현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삼십 년 전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 금새 가능해질 거라 기대했던 암과 난치병 정복은 유전체 지도가 완성된 지금도 요원하다. 그렇다 해도 유전체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유전체에 대한 지식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해진 것은 분명하다. 과거 유전체 프로젝트에 쏟아지던 기대와 찬사는 이제 디지털 기술을 향하고 있다. 그러니 기대만큼의 변화가 없더라도 서두르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변화가 지속되리란 사실은 확실하다. 우리는 그저 겸손한 마음으로 기술이 만들어가는 성취를 즐기면 될 것이다.


참고문헌

1. Perez MV, Mahaffey KW, Hedlin H, et al. Large-scale assessment of a smartwatch to identify atrial fibrillation. N Engl J Med 2019;381:1909-17.

2. Lubitz SA, Faranesh AZ, Selvaggi C, Atlas SJ, McManus DD, Singer DE, et al. Detection of Atrial Fibrillation in a Large Population Using Wearable Devices: The Fitbit Heart Study. Circulation. 2022;146:1415-24.

3. 에릭 토폴. 청진기가 사라진 이후 (The Patient Will See You Now: The Future of Medicine Is in Your Hands). 청년의사. 2015.


2022년 10월 10일 월요일

애주가를 위한 변론

학회에서 음주를 주제로 한 세션을 듣던 중이었다. 마지막 강의는 심뇌혈관 질환 환자에 대한 상담이었는데 적정 음주 기준에 대한 설명에 이어 ‘술을 끊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슬라이드가 등장했다. 심뇌혈관 질환, 예를 들어 뇌졸중을 앓고 회복한 환자가 이전에 과음을 해왔다면 의사는 당연히 술을 끊도록 권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적정 음주를 해왔다면 그 경우에도 술을 완전히 끊도록 해야 할까.

일단 ‘적정 음주’의 기준부터 알아보자. 술의 종류에 따라 도수가 다르므로 적정 음주의 기준을 계산할 때는 표준잔(standard drink)을 이용한다. 1 표준잔은 알코올 14그램에 해당하는 양으로, 주종 별로 맥주 350 cc, 포도주 150 cc, 소주 100cc, 양주 40 cc 가량이다.주1) 각각 맥주 1캔, 포도주 1잔, 소주 2잔, 양주 1잔 정도라 생각하면 된다. 한국인에서 적정 음주의 기준은 남성의 경우 일주일 평균 8 표준잔 이하이다.주2) 이 기준을 넘어서면 과음(heavy drinking)이 된다. 그러니 일주일에 맥주로는 여덟 캔, 소주로는 두 병을 넘기면 과음이 되는 것이다. 여성 또는 65세 이상 남성의 경우 그 절반인 일주일에 4 표준잔, 65세 이상 여성의 경우엔 또 그 절반인 2 표준잔이 적정 음주의 기준이다.

폭음(binge drinking)에 대한 기준도 있다. 한 번에 4 표준잔(맥주 4캔, 소주 8잔) 부터는 폭음이다. 소주 한 병을 넘게 마시면 폭음인 셈이다. 조금씩 자주 마시는 것과 가끔씩 많이 마시는 것 중 어떤 게 건강에 더 안 좋은가 하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결론적으론 둘다 해롭다. 이런 질문은 대개 술을 즐기는 분이 하는데, 어떻게든 술을 마실 수 있는 구실을 찾으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그래도 덜 해로운 방향으로 술을 마시겠다면 낫지 않느냐 할 수 있지만, ‘조금씩’이 실제로는 조금이 아니고 ‘가끔씩’도 실제 가끔이 아닌 경우가 많은 게 문제이다.

글 첫머리의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한 다음 단계는 음주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는 것이다. 술을 즐기시는 장인께서는 적당히 마시는 술은 몸에 좋은 약주(藥酒)라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셨는데, 소량의 음주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통념은 오래되었고 근거도 많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하루 한두 잔까지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에 비해 사망 위험이 낮다. 적정 음주를 하는 경우 관상동맥질환과 뇌졸중, 심장 돌연사 위험 역시 낮아진다는 연구도 많다. 심뇌혈관질환 예방에는 술이 도움이 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알코올이 HDL 콜레스테롤을 높이고 혈액응고인자 농도를 낮춰 혈전 생성을 줄이는 것이 기전으로 꼽힌다. 단, 이 모든 긍정적인 결과는 과음이 아니라 적정 음주에서 그친다는 전제 하에서의 이야기다. 과음을 하게 되면 위험은 오히려 훌쩍 높아진다.

음주와 사망 위험의 관련성에 대한 메타분석 결과. 적정 음주에서 위험도가 낮아지고 이후 높아지는 J-shape 곡선을 그린다. (출처: Arch Intern Med. 2006;166(22):2437-45)

적정 음주라고 모든 질환에 도움이 되진 않는다. 같은 심장 질환이라 해도 부정맥의 경우엔 과음이 해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소량의 음주가 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찾아볼 수 없다. 알코올은 직접적으로 심장 근육 세포에 독성을 끼쳐 심방 세동과 같은 부정맥을 일으킨다. 주말이나 크리스마스, 신년 등의 시기에 과음으로 인한 부정맥이 늘어나는 현상을 빗대어 휴일심장증후군(holiday heart syndrome)이란 용어가 생기기도 했다. 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가벼운 음주도 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면서 음주에 대한 허용 기준도 보다 엄격해지는 추세이다. 2016년에는 국민 암 예방 수칙이 '술은 하루 두 잔 이내로 마시기'에서 '암 예방을 위해 하루 한두 잔의 소량 음주도 피하기'로 개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적정 음주라도 질환에 따라 긍정적, 부정적 영향이 모두 있으므로 술을 안 마시던 사람이 심뇌혈관질환 예방을 위해 굳이 한두 잔을 일부러 마실 필요는 없다. 특히 부정맥이나 간 질환, 암 등 알코올에 민감한 질환을 앓고 있다면 금주가 필수이다. 이런 질환이 없고 과음이나 폭음을 하는 경우엔 적정 음주량 이내로 술을 줄이면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슬라이드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강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음주와 심뇌혈관질환의 관련성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조금 어색한 느낌을 받았다. 절주를 강조하기보다는 소량의 음주가 괜찮다는 걸 확인하려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본인도 맥주를 즐긴다는 강사의 고백을 듣고서야 그 느낌이 맞았음을 알게 되었다. 심뇌혈관질환이 있다 해도 하루 한두 잔까지는 괜찮다는 결론에선 마치 경범죄를 저지른 이의 죄를 사면하는 선고를 듣는 것 같았다. 적정 음주의 기준을 따른다면 술에 대한 애정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아도 되니 다행스런 일이다. 호부호형을 허락 받은 길동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강사께서는 딱딱한 연구 결과보다 스스로의 음주 습관에 대한 설명을 할 때 훨씬 활기차 보였다. 요즘은 술을 줄이기 위해 무알콜 맥주를 즐겨 한다는 말씀에선 애잔함과 함께 동질감이 느껴졌다.

고백하자면, 나도 맥주를 좋아한다. 종종 적정 음주 기준을 넘기기도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캔맥주를 홀짝이고 있음도 함께 고백한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장기 연수를 갔다가 올해 돌아왔는데, 좋은 기억이 많지만 사실 무엇보다 그리운 것은 그곳의 다양한 로컬 맥주이다. 자타 공인 맥덕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소설에서 하루 끝자락에 마시는 차가운 맥주야말로 삶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동감이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맥주는 일반 냉장고보다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이 더 차갑고 맛있다. 하루키도 이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아직까지 내 건강에 문제가 없어 맥주의 시원하고 쌉싸름한 맛을 즐기며 하루를 정리할 수 있음이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적정 음주 한도를 존중하는 선에서 말이다. 그러니 이제 김치냉장고 서랍을 열고 두 번째 맥주 캔을 꺼내와야겠다. 


주1) 알코올 양은 WHO의 환산 공식 ‘술의 양(cc)*도수(%)*알코올 비중(0.79)=알코올 양(g)’으로 계산한다. 계산이 번거롭지만, 주종 별로 잔의 크기가 다르므로 과거보다 도수가 낮아진 소주를 제외하면 각각 한 캔, 또는 한 잔이 대략 1 표준잔이 된다.

주2) 미국의 National Institute on Alcohol Abuse and Alcoholism (NIAAA)에서는 남성의 경우 하루 2 표준잔, 일주일에 14 표준잔 까지를 적정 음주의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체구가 작고 알코올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한국인은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었고, 최근 권고안에서는 일주일에 8 표준잔을 기준으로 삼았다.


참고문헌

* 정진규, 김종성, 윤석준, 이사미, 안순기. 음주 진료 지침. Korean J Fam Pract 2021; 11(1): 14-21.

* Di Castelnuovo A., Costanzo S., Bagnardi V., Donati M.B., Iacoviello L. and de Gaetano G. : "Alcohol dosing and total mortality in men and women: an updated meta-analysis of 34 prospective studies". Arch Intern Med 2006; 166: 2437.


2022년 9월 12일 월요일

자연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자연을 배경으로 한 프로그램이 인기다. 한적한 시골집에서 하루 세끼를 지어 먹거나, 산속에서 캠핑을 하거나, 논밭에서 땀을 흘리며 일을 하는 연예인 출연자의 하루를 담는 등 종류도 내용도 다양하다. 너무 많은 프로그램이 나오다 보니 최근엔 오히려 식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또 새로운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걸 보면 이러한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은 아직 식지 않은 듯 하다. 산 속에서 혼자 사는, 이른바 자연인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은 첫 방영 후 십 년이 된 지금도 시청률이 높기로 손꼽힌다고 한다.

산에서 약초나 나물 캐고, 텃밭에서 채소 따고, 삼시세끼 해먹는, 어찌 보면 심심하고 재미없을 법한 내용으로 가득한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은 것은 도시를 떠나 자연과 가까운 곳으로 돌아가고픈 현대인의 욕망을 대리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이란,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겐 돌아가고픈 고향이며, 매일 콩나물 시루 버스나 지하철에 실려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에겐 힐링을 느끼는 대상이며, 아파트와 빌라촌에서 일상을 보내는 이들에겐 언젠가 살아보고 싶은 공간이다. 무엇보다 자연은 건강을 선사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각종 질병이 생겼다가 산 속에서 자연을 벗삼아 살면서 건강을 회복했다는 경험담은 자연인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에서 자주 등장하는 내러티브이다. 자연인이 숲에서 직접 채취하는 약초도 그가 건강을 회복하는 과정에 한몫 했던 것으로 그려진다.

자연을 가까이하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를 증명하는 연구 역시 차고 넘친다. 녹지가 많은 곳에 살수록 심혈관 질환, 비만, 당뇨, 천식으로 인한 입원, 심리적 스트레스, 나아가 사망 위험까지 줄어든다. 2만 명의 영국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일주일에 120분 이상을 공원, 숲, 해변 등 자연 속에서 보낸 사람들은 자연과 전혀 접하지 않은 이들에 비해 스스로 건강하고 삶에 대해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이 현저하게 높았다(그림). 집 근처에 녹지가 얼마나 많은지는 현재뿐 아니라 먼 미래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덴마크에서 90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어렸을 때 살았던 집 주변의 녹지 비율과 청소년, 성인이 되었을 때 정신 건강 사이의 관련성을 분석했는데, 녹지 비율이 가장 낮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가장 높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에 비해 정신 질환 발생률이 최대 55퍼센트 높았다. 이쯤 되면 도시에서 살면서 망가졌던 건강을 산에서 회복한 자연인의 이야기에도 나름 근거가 있는 셈이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낄 확률은 자연과 접하는 시간이 일주일에 120분에 이를 때까지 급격히 높아지고 200∼300분 이후부턴 차이가 없어진다. 가로축은 일주일 동안 자연과 접한 시간(분), 세로축은 건강하다고 느낄 확률.

그러나 자연을 직접 가까이 할 여유가 없는 우리는 간접적으로나마 자연을 느끼려 한다. 마트에서 유기농 채소를 사고, 옷 가게에선 합성 섬유보다는 천연 섬유 옷을 고르고, 횟집에서도 양식보다는 자연산을 찾는다. 일반 채소보다 비싼 유기농 채소를 찾는 것은 농약이나 화학 비료와 같은 인공 물질을 쓰지 않아서 건강에 더 좋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영양 성분에 차이가 있다는 보고도 있다. 하지만 유기농 채소가 일반 채소보다 건강에 좋다는 과학적 근거는 빈약하다. 일반 당근이나 유기농 당근이나 당근은 그저 당근인 것이다. 농약의 성분이 건강에 좋을 리는 없겠지만 이는 잘 씻어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피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농사란 행위가 근본적으로 인공적인 것이다. 진정한 자연 식품만 골라 먹으려 한다면 원시 시대처럼 수렵 채집한 음식으로만 오롯이 식탁을 채워야 할 것이다. 영양실조에 걸릴 위험은 덤이다.

우리는 흔히 자연에서 얻은 천연 물질은 건강에 이롭고 안전한 반면, 인위적으로 합성한 것은 건강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반대의 예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백여 년 전 영국의 화학자 플레밍이 처음 발견해 페니실린이란 이름을 붙인 화학 물질은 패혈증으로 꼼짝없이 사망했을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인류가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처음으로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 것도 푸른곰팡이에서 추출한 페니실린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이후로 개발된 다양한 항생제는 인류의 수명을 비약적으로 늘렸다. 근래엔 항생제의 오남용과 내성 문제가 더 심각하게 대두되지만 의료 자원이 부족한 최빈국의 경우엔 항생제가 없어 사망하는 환자가 여전히 많다.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후원한 연구에서는 아프리카의 5세 미만 아이들에게 일 년에 두 번 경구 항생제를 주는 것만으로 사망을 13.5퍼센트 줄였다. 물론 모든 항생제는 공장에서 합성된 인공 물질이다. 하지만 패혈증이 왔을 때 옆에 항생제를 두고 염증 완화에 좋다는 약초를 달여먹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헬리코박터균을 발견한 공로로 2005년 노벨상을 수상한 배리 마셜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항생제를 투여함으로써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 그러나 항생제를 먹지 않아 죽은 사람은 부지기수다.”

항생제 못지 않게 인류의 수명을 연장시킨 인공 화합물은 또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만들어 최악의 전염병으로 손꼽히는 천연두를 박멸한 주인공은 백신이었다. 과거 미국에서 ‘죽음과 세금만큼 불가피한 것’이라고 할 정도로 흔했던 홍역 감염도 1960년대에 백신이 개발된 후 매년 수십만 건에서 수백 건으로 줄었다. 하지만 제조 과정에서 들어가는 화학 첨가물이 자폐와 같은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잘못된 학설이 퍼지면서 백신 접종이 감소했고, 그 결과 거의 사라졌던 홍역이 다시 활개를 치기도 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백신 반대론은 최근 유전자 재조합 방식인 코로나 백신을 두고 다시 부상했다. 백신 반대론에서도 합성물에 대한 불신과 자연에 대한 일방적인 짝사랑을 찾을 수 있다. 백신에 의한 면역과 자연 면역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제로섬이 아니지만, 합성 물질인 백신을 피하고 자연스럽게 병에 걸려 면역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백신 반대 운동과 자연 면역에 대한 맹신이 결합해 수두 파티(수두에 걸린 아이를 초대해 다른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수두에 걸리게 하는 것)같은 어이없는 사건을 일으키기도 한다. 

천연 식품과 합성 식품은 또 어떤가. 천연 식품이라고 다 건강에 이롭지 않고 합성 식품이 무조건 해롭지도 않다. 적절한 허가를 받아 합성 식품에 들어가는 첨가물은 대부분 안전하다. 첨가물이 알레르기나 과민 반응을 일으킬 수 있지만 이는 견과류나 계란과 같은 천연 식품도 마찬가지이다. 천연 식품인 밥이나 과일도 너무 많이 먹으면 비만이 생길 수 있다. 당뇨병이 있어 설탕이 든 음식은 피하면서도 천연 꿀은 건강에 이로울 거라 생각하고 매일 먹어서 혈당이 높아진 환자도 종종 만난다. 꿀의 성분인 과당 역시 간에서 포도당으로 바뀌어 혈당을 높인다. 설탕보다 혈당을 천천히 올린다 해도 당뇨병 환자에게 장려할 음식은 아닌 것이다. 천연 빵, 천연 주스, 천연 비타민 등 천연이란 단어만 붙으면 질이 높고 건강에도 좋다는 느낌이 들지만 역시 근거는 빈약하며 대부분 마케팅의 영향을 받은 막연한 기대에 불과하다. 천연 식품이든 합성 식품이든, 무엇보다 과하지 않고 적당히 먹는 것이 좋다.

자연은 돈을 주고 살 수 없지만 먼 곳에 있지 않다. 앞에서 예로 든 영국의 연구에서 자연에 해당하는 환경은 숲, 강이나 해변, 시골 농장 등 외에 도심의 야산이나 공원도 포함되었다. 일주일에 두 시간만 가까운 공원이나 산에서 보내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는 것이다. 어느 도시에 살든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자. 


참고문헌

* White MP, Alcock I, Grellier J, Wheeler BW, Hartig T, Warber SL, et al. Spending at least 120 minutes a week in nature is associated with good health and wellbeing. Sci Rep 2019;9:1–11.

* Engemann K, Pedersen CB, Arge L, Tsirogiannis C, Mortensen PB, Svenning JC. Residential green space in childhood is associated with lower risk of psychiatric disorders from adolescence into adulthood. Proc Natl Acad Sci U S A. 2019;116(11):5188-93.

* Mie A, Andersen HR, Gunnarsson S, Kahl J, Kesse-Guyot E, Rembiałkowska E, et al. Human health implications of organic food and organic agriculture: a comprehensive review. Environmental Health. 2017;16(1):1–22.

* Keenan JD, Bailey RL, West SK, Arzika AM, Hart J, Weaver J, et al. Azithromycin to Reduce Childhood Mortality in Sub-Saharan Africa. N Engl J Med. 2018;378(17):158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