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읽었던 정아은 작가의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만큼 솔직한 글쓰기 책은 없다는 카피가 어울리는 내용이라 생각했다. 솔직함과 자기 비하의 경계를 위태롭게 넘나들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아 좋았다. 읽으면서 여러 번 킥킥거리며 웃기도 했다. 글쓰기 경험에선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한 내 입장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다. 인상깊었던 몇 가지 내용을 적어본다. 기억에만 의존한 내용이라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책의 첫머리에서는 잘 써야 한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나아가 '잘 쓰지 않겠다'고 다짐해야 한다고 말한다. 잘 써야 한다는 욕심에 사로잡히면 초고 자체도 아예 쓰지 못할 수 있다. 나도 머릿 속의 생각이 내 손을 거쳐 활자화 되는 순간에 그 문장의 조악함과 유치함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경험을 종종 한다. 머릿 속을 맴도는 아이디어는 왜 그대로 멋지게 옮겨지지 않는 걸까 괴로워하다 보면 어찌어찌 써냈던 몇 줄의 문장도 그냥 깔끔하게 지우고 새로 시작하는 게 나을 거란 유혹에 무릎을 꿇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고를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방점은 '초고'보다 '완성'에 찍힌다. 유치함과 설익음, 비문 투성이의 글이라 해도 일단 초고를 끝까지 써야 한다는 것.- 글을 쓰는 이유는 인정욕구이다. 일단 깊게 동감하고. 내 경우엔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는 경험을 할 때가 많다. 어렴풋한 느낌으로만 실재하던 생각이 글을 쓰다보면 명확한 형태를 갖추게 되고, 내가 이래서 그렇게 느꼈구나 하고 이유를 알게 되기도 한다. 내게 글쓰기란, 갖추어진 생각을 단순히 글로 바꾸는 과정이 아니고, 뒤죽박죽 정리가 안 된 상자 한 구석을 뒤져 꺼낸 찰흙덩어리를 요모조모 살펴보며 그 안에 숨겨진 본래 모양을 깎아내는 작업에 가까울 때가 많다. 그 작업은 대개 힘들고 수고롭지만 내 생각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경이로움을 느끼기에 다시 무언가를 쓰게 된다.
- 칼럼, 에세이, 논픽션, 소설을 집필하는 자세와 방식의 차이. 글의 형태와 목적에 따라 달라지는 작업 방식이 흥미로웠다. 내 경우에도 논문이나 교과서와 같은 학술 원고와 에세이는 차이가 크다. 이과생의 글쓰기와 문과생의 글쓰기라고나 할까. 양쪽의 모드를 스위치를 켜고 끄듯이 쉽게 바꿀 수 있다면 좋을텐데 딱딱한 글쓰기 모드에서 말랑말랑한 글쓰기 모드로 바꾸는 게 쉽지 않다. 내게 불가능해 보이는 이런 일을 어떤 이들은 너무나 쉽게 해내는 듯 보인다. 분명 의학을 다룬 책임에도 유려한 문체와 문학적 향기로 감탄과 질투를 자아내는 글도 있다. (이런 문장으로 채워진 책은 보통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오르거나 퓰리처상을 받는다.)
- 작가를 둘러싼 사람들, 그중에서도 편집자에 대한 글에서도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책 두 권을 쓰면서 네 명의 편집자를 만났는데, 모두가 예의바르고 성실한 분들이었다. 겨우 네 명의 편집자를 만나면서도 편집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내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편집자의 세계는 지금 내가 알게 된 것보다 훨씬 넓고 깊다는 생각을 한번 더 하게 되었다. 마음 한 구석이 뜨끔거리기도 했다. 나는 그들에게 괜찮은 저자였던가? 출판의 세계에 대해 쥐뿔도 모르면서 내 글의 주인이라는 생각에 은근슬쩍 자만과 허영을 내비치지는 않았던가?
- 정아은 작가님의 책은 오래 전 읽었던 '잠실동 사람들'이 전부였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었고, 작가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내가 살고있는 동네라 슬쩍 호기심이 들어 빌려왔었고, 잠실이라는 동네에 사는 인간군상을 꽤나 사실적으로 그렸구나 하고 생각했던 걸로 기억한다. 주말에 들렀던 서점에서 그의 다른 책 한 권을 더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