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를 달군 이슈 중 하나는 문해력에 대한 것이다. 작년에 있었던 ‘심심한 사과’ 논란이 그 예이다. 어느 웹툰 작가의 사인회를 준비하던 카페 측에서 예약 과정의 불편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는 글을 올렸는데, 일부 누리꾼들이 '마음의 표현 정도가 깊고 간절하다'란 뜻의 심심(甚深)이란 단어를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뜻으로 오해하고 사과에 성의가 없다며 주최측을 비난한 것이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디지털 세대의 낮은 문해력을 개탄하는 이들이 많았다.
해프닝 정도로 넘길 일이 논란이 된 이유는 이전에도 비슷한 일들이 있어서였다. 몇 년 전 영화 ‘기생충’ 개봉 당시엔 어느 평론가의 한 줄 평이 화제가 되었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라는 평에 대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겠다, 너무 현학적이다, 꼭 어려운 단어를 써서 잘난 체를 해야 하느냐며 SNS와 게시판을 통해 불만을 제기한 이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평론의 내용보다 단어의 어려움이 화제가 되는 상황의 배경에 낮은 문해력이 있다고 해석하는 의견이 많았다. 제작년엔 정치권에서 모 당대표가 다른 당의 대표에게 ‘무운을 빈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를 운이 없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하고 논평을 한 방송사 기자가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같은 해엔 ‘사흘’ 논란도 있었다. 토요일인 광복절부터 월요일 임시 공휴일까지 사흘 연휴가 이어진다는 신문 기사에 대해 순 우리말인 ‘사흘’의 뜻을 4일로 착각한 이들이 “3일인데 왜 사흘이라고 쓰냐”는 댓글 항의를 올렸던 것이다. 덕분에 ‘사흘’이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비슷한 사례로 모레 다음날을 의미하는 ‘글피’의 뜻을 모르거나 ‘금일’을 금요일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문해력, 영어로 리터러시(literacy)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위의 사례들은 단어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생긴 일들이지만,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되고 문장이 모여 단락과 맥락을 이루니 결국 이해의 문제는 단어에만 머물진 않을 것이다. 비슷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한국인의 낮은 문해력을 지적하는 의견이 단골처럼 등장한다. 문맹률이 낮기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글을 읽고 이해하는 문해력은 점점 나빠지고 있으며, 특히 청소년과 젊은 세대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반면에 일부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문해력이 낮다는 진단은 성인 중심의 시각이고 문해력 논란도 과장되었다고 반박한다. 요즘 세대가 영상과 멀티미디어에 대한 이해 능력은 훨씬 높으며, 디지털 시대에서 문자 위주의 텍스트를 이전보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문해력이 낮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오가는 요즘 아이들의 신조어를 외계어처럼 받아들이는 어른들을 보면 틀린 말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문해력 문제의 심각성을 보는 시각은 이렇게 관점에 따라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전반적인 문해력 수준이 과거에 비해 낮아졌다는 점에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것 같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와 같이 객관적으로 문해력을 평가하는 점수도 낮아지는 추세이다. 초중고 교사들 역시 학생들의 문해력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교과서나 긴 지문을 읽기 버거워한다는 것이다. 대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길고 복잡한 글의 맥락을 파악하고 글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글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는 강의가 보편화된지 오래이다. 서울대에서는 작년부터 전체 신입생을 대상으로 글쓰기 평가를 시행해왔는데 올해 시험의 경우 3명 중 1명이 미달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문해력과 관련된 논란이 반복되자 작년엔 대통령까지 나서 국무회의에서 “전 세대에 걸쳐 디지털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바야흐로 국민의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국가가 걱정하는 상황이 된 것인데,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 어린 백셩을 어엿비너긴’ 세종 시대 이후 육백 년 만의 일이 아닐까 싶다.
위에서 언급한 디지털 문해력은 스마트폰 등장 이전엔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이다. 과거엔 문자로 된 글을 두고 문해력을 이야기했지만, 요즘 문해력은 단순히 단어와 문장의 뜻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넓은 의미를 포함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문자 외에 이미지나 동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텍스트를 접한다. 그러다 보니 문해력도 컴퓨터 문해력, 미디어 문해력, 정보 문해력, 수 문해력, 과학 문해력 등 대상에 따라 다양하게 세분화된다. 이어서 이야기할 건강 문해력도 그 중 하나이다.
헬스 리터러시라고도 불리는 건강 문해력은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말한다. 건강 정보를 제대로 읽고 판단하지 못하면 자칫 건강에 해를 끼칠 행동을 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메탄올을 마시면 감염을 막을 수 있다는 가짜 정보가 돌면서 실제 메탄올을 마셔 전세계적으로 수백 명이 사망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감염을 예방한다며 신도들의 입에 소금물 스프레이를 뿌린 종교 시설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국제 기구와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일찍부터 건강 문해력 향상을 국가 보건 정책의 주요 의제로 채택하고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2021년 국내 성인 95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건강 문해력이 ‘적정’ 수준으로 나온 응답자는 전체의 50.6%, ‘경계’수준은 20.1%, ‘부족’수준은 29.3%였다. 자신에게 필요한 건강 정보를 적절히 찾고 이해할 수 있는 성인이 절반에 불과하다는 의미이다.(한국의료패널 부가 조사) 특히 고령자와 취약 계층에서 문해력 점수가 낮았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건강 문해력이 더 낮은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교육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교육부에서 성인 문해 교육 활성화 지원 사업을 하고 있고, 일부 지자체에서는 자체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아직까진 충분치 않지만 대통령도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지시했으니 앞으로 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런데 교육 외에 도움이 될 만한 다른 방법은 없을까.
고혈압으로 진료를 받던 환자가 있었다. 그는 서너 달에 한 번씩 진료실을 찾았고, 그날도 여느 때처럼 혈압을 확인하고 약을 처방하려는데 그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건강검진 결과를 받았는데 B형 간염 검사 항목에 이상이 있다는 것이었다. 결과지를 살펴보니 B형 간염 항원은 음성, 항체는 양성이었다. 문제될 것이 없는 결과라 뭐가 이상한지 되물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항체 검사 결과의 양성이란 단어를 보고 이상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오래 전 부친이 간경변을 앓다가 돌아가셨는데 자신도 B형 간염이 생긴 줄 알고 며칠 동안 속앓이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병원에 온 김에 검사를 다시 받아보려 했다는 것이다. 같은 양성이라도 항원과 달리 항체 양성은 면역이 있다는 뜻이며, 향후에도 B형 간염에 걸릴 위험은 없다고 설명하니 그제서야 얼굴빛이 밝아졌다.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었음은 물론이다.
B형 간염 항원과 항체 양성의 경우처럼, 양성(positive)과 음성(negative)은 검사 항목에 따라 긍정적인 결과가 되기도 하고 부정적인 결과가 되기도 한다. 같은 간염이라도 B형 간염은 ‘항체 양성’이 면역이 있다는 뜻이지만 C형 간염에선 반대로 병이 있어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더 나아가면 ‘악성(malignant)’의 반대말인 ‘양성(benign)’도 있다. 악성 종양, 양성 종양이 예이다. 양성이란 단어만큼 흔히, 그리고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의학 용어도 없을 것이다. 이쯤 되면 일반인 입장에선 헷갈릴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덕분에 그나마 ‘검사 양성’의 의미를 알게 된 사람이 많아지긴 했다. 하지만 건강 검진 결과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양성’의 의미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헷갈리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악성의 반대말이라도 다른 용어를 사용했다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종종 느낀다. 애초에 더 나은 용어를 썼다면 좋겠지만, 당장 용어를 바꿀 수 없다면 그 의미를 좀더 자세히 설명해야 할 것이다.
전 국민이 건강 검진을 받게 되면서 과거엔 의사의 설명을 통해서만 듣던 검사 결과를 직접 접하게 되는 일도 많아졌다. 의료진의 설명 없이 달랑 결과지만 받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다 보니 검사 결과에 이상이 없는데도 괜한 걱정을 하거나, 반대로 이상이 의심되는데도 꼭 필요한 후속 검사나 진료를 받지 않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사실 많은 검사 결과가 담긴 결과지를 혼자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직장인 1000여명에게 조사한 결과 건강 검진 결과지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답한 응답자가 71%나 되었다고 한다.(2020년 리치플래닛 조사) 수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는데다 어려운 전문 용어가 많아 검사 결과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건강 검진 결과에 대해 의사의 설명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건강 검진 결과지는 일반인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친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문해력을 높이는 교육은 중요하다. 하지만 건강 정보의 경우엔 그보다 먼저 국민의 문해력 수준에 맞는 정보를 만드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건강 검진 결과지도, 온라인 건강 정보도 보다 친절해질 필요가 있다.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포털이나 대학 병원 홈페이지 등 정확한 정보를 담은 플랫폼은 이전보다 늘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 담긴 정보들은 여전히 어려운 구석이 많으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 정확하고 어려운 정보보다 부정확하고 쉬운 정보가 대중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참고
한국인 '건강 문해력' 어느 정도?…"성인 절반만이 '적정' 수준"
https://www.yna.co.kr/view/AKR20230304027400530
"직장인 71%, 건강검진 결과지 충분히 이해 못 해"
https://ebn.co.kr/news/view/1027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