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3일 금요일

기술의 발전을 생각하다.

최근 갑상선 기능 항진증 진단을 받았다. 갑상선에서 호르몬을 과하게 만들어내는 병이다. 평소보다 피로가 심해 검사를 했지만 과로 때문으로 생각했고, 채혈을 할 때까지만 해도 솔직히 호르몬 수치에 이상이 있을 거라 예상하진 않았다. 다른 증상들을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갑상선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체중이 줄고 심박수가 빨라지며 숨이 차거나 손이 떨린다. 불면증을 겪기도 하고 설사와 같은 위장 증상이 생기기도 한다. 몇 시간 뒤 확인한 갑상선 호르몬 수치는 정상 범위보다 훨씬 위쪽에 있었다. 그제서야 최근에 증상이 있었던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체중이 1-2킬로그램 정도 줄긴 했다. 평소보다 잠을 설쳤던 것도 같고, 짜증이 늘고 신경이 날카로워졌던 것이 과도한 호르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갑상선 이상을 의심하지는 못했으니 아내가 검사를 받아보라고 재촉하지 않았다면 증상이 더 심해진 뒤에야 발견했을 지도 모른다. 진료실에서 익숙한 질병임에도 막상 내 문제는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 처방전을 챙겨 퇴근을 준비하는데 아이폰 건강 어플리케이션의 알림이 떴다. 애플 워치와 연동된 스마트폰은 가끔 건강 관련 지표의 추세 변화를 알려준다. 대개는 걷기, 운동량, 소비 칼로리 등에 대한 것이고, 지난 달에 비해 걷기 양이 줄었다며 가벼운 경고를 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번엔 처음 보는 내용이었다.

‘지난 5일 동안 휴식기 심박수가 평균적으로 늘었습니다.’

그래프는 최근 닷새 동안의 분당 심박수가 늘었음을 보여주었다. 큰 변화는 아니었다. 겨우 10회도 안 되는 변화였고 정상 범위를 벗어나지도 않았다. 그러니 스스로 느낄 정도는 아니었으리라. 그렇지만 스마트폰은 그 미묘한 변화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갑상선 이상을 진단받은 날에 알림이 온 것은 그저 우연일 수도 있지만 조금은 놀라웠다.


겨우 분당 69회에서 77회로의 변화였다.

심장 박동에 이상이 생기는 병인 부정맥을 진단하는 표준 검사는 24시간 심전도(홀터 검사)이다. 이 검사는 장비를 받고 반납하는 과정에서 병원을 방문해야 하고 검사 하는 날은 샤워나 운동 등 일상 생활에도 제약이 있어 여러모로 번거롭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부정맥의 속성상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최근엔 가슴에 붙여 일주일 이상 심전도를 측정할 수 있는 작은 패치 형태의 기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그리고 편하게 측정 가능한 방법일수록 심장 박동의 변화를 발견해내기에 용이하다. 심전도 측정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 워치가 등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마트 워치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부정맥을 직접 발견한 환자의 사례는 이제 흔한 뉴스가 되어 버렸다. 심지어 수십만 명을 대상으로 애플 워치와 핏빗의 심방세동 진단 기능을 확인한 연구가 각각 NEJM과 Circulation 저널에 발표되기도 했다. 조만간 심장 박동을 읽는 기능에 관한 한 디지털 기기가 의사의 진단을 대체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며칠 전엔 디지털 기기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볼 계기가 있었다. 고혈압 환자에게 생활습관 관리에 대해 설명하면서 저염식을 권하자 환자의 아내가 잘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염도 측정기 이야기를 꺼냈다. 사나흘에 한 번씩 남편의 소변을 받아 염도를 측정한다는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싱겁게 먹기 위해선 우선 내가 얼마나 짜게 먹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지만 사람의 입맛엔 차이가 있어 스스로 정확히 알기 어렵다. 싱겁게 먹는다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흔하다. 이러한 이유로 병원에서는 환자의 24시간 소변을 모아 나트륨 함량을 측정한다. 섭취한 나트륨의 대부분은 소변으로 배설되므로 이는 싱겁게 먹는지 묻는 것보다 훨씬 정확한 방법이다. 하지만 일상 생활을 하면서 하루 동안 소변을 모으기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염도 측정기는 소변을 받아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 훨씬 간편한데다 매일의 식단에 따른 변화까지 알 수 있다. 앞의 환자의 경우에도 외식을 한 다음날엔 매번 소변의 염도가 높아져서 되도록 집에서 밥을 먹는다고 했다. 내가 먹는 음식에 따른 소금 섭취량 변화를 곧바로 파악할 수 있으니 저염식을 실천하는 데 이보다 좋은 방법이 있을까. 

나중에 검색을 해보고 염도 측정기 종류가 제법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스마트폰과 연동이 되는 제품도 보였다. 대개는 음식의 염도 측정에 쓰이지만 소변의 염도를 측정하는데 활용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진료실에서 이런 환자를 만난 건 처음이었기에 저염식을 위한 노력을 칭찬하고 격려해야 마땅했지만 사실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순간 머리 속에 염도 측정을 하는 일련의 과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컵에 샛노란 소변을 받아 조심스럽게 측정기를 담그는, 약간은 민망한 그 광경이. SF 영화 ‘아일랜드’의 첫머리에는 주인공이 소변을 보자 곧바로 변기 위의 스크린이 나트륨 과다를 경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언젠가는 이렇게 염도를 분석해주는 변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된다면 고혈압 환자들은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자연스레 전날 먹은 소금의 양을 알게 될 것이고, 나도 민망한 광경을 떠올리지 않고 소변의 염도를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불안 때문에 검사를 자주 받기도 한다. 일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고 유방외과를 다니는 내 환자 한 분은 다른 병원에서도 추가로 두세 달마다 초음파 검사를 받고 있었다. 최근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검사를 너무 자주 받을 필요 없다고 충고했는데, 내 말이 유난스런 행동을 나무라는 듯이 들렸는지 그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나는 환자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려주지 못한 데에 미안함을 느껴야 했다. 그가 다음과 같이 말했기 때문이었다.

“불안하니까요. 마음 같아선 집에다 기계를 두고 매일 검사하고 싶어요.” 

물론 암 수술을 받은 환자라 해도 매일 검사를 받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의 바램과 같이 환자 스스로 스캔할 수 있는 기기가 나올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게 검색대를 통과하거나 거울 앞에 서는 것처럼 간단하고 손쉬운 방법이라면, 매일 검사를 받지 않는 것이 오히려 유난스럽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주, 그리고 스스로 검사할 수 있는 기기라면 연속혈당측정기를 빼놓을 수 없다. 손가락 끝을 침으로 찔러 혈액으로 검사하는 기존 방법은 통증과 번거로움으로 검사 횟수에 한계가 있다. 반면 팔뚝에 붙이는 이 조그만 기기는 피부 아래 삽입된 센서를 통해 혈당 수치를 5분마다 자동 측정해 스마트폰에 전송하고, 이를 통해 환자는 일상 생활에 따른 혈당의 변화를 즉각 알 수 있다. 혈당을 많이 올리는 음식이나 운동의 효과를 실감하게 되어 자연스레 생활 습관의 중요성도 깨닫는다. 연속혈당측정기는 국내외 당뇨병학회의 진료 지침에도 포함될 만큼 효과를 입증했다3). 측정기를 처음 시험 삼아 사용했을 때 나는 하루 열 번 이상 혈당 수치를 확인했다. 예전이라면 그만큼 손가락을 찔러야 했겠지만 이 기기라면 몇 번을 확인하든지 스마트폰을 팔뚝에 살짝 대기만 하면 된다. 현재는 1-2주 동안 사용하는 제품이 대세지만 6개월까지 사용할 수 있는 이식형 제품도 개발되었으니 앞으로 편의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눈부시다. 손가락만 대어도 심전도를 그려내는 시계와 실시간으로 혈당을 기록하는 측정기는 그 자체로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기술이 만들어낸 진정한 성취의 지점은 의료 소비자와 공급자 간의 관계와 역할의 변화에 있다. 병원을 방문하고 의사를 만나야 가능했던 많은 일들이 이제 환자 손에서 이루어진다. 의료 공급자에게 쏠려있던 헤게모니는 점점 소비자인 환자에게로 이전될 것이다. 일찍이 미래 의학 전문가 에릭 토폴은 “The doctor will see you now. (의사 선생님께서 지금 진료해 주실 거에요.)”란 말은 미래에 “The patient will see you now.”로 바뀔 것이라 했다. 이 전망은 지금도 유효하다. 하지만 이러한 미래가 언제 실현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삼십 년 전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 금새 가능해질 거라 기대했던 암과 난치병 정복은 유전체 지도가 완성된 지금도 요원하다. 그렇다 해도 유전체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유전체에 대한 지식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해진 것은 분명하다. 과거 유전체 프로젝트에 쏟아지던 기대와 찬사는 이제 디지털 기술을 향하고 있다. 그러니 기대만큼의 변화가 없더라도 서두르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변화가 지속되리란 사실은 확실하다. 우리는 그저 겸손한 마음으로 기술이 만들어가는 성취를 즐기면 될 것이다.


참고문헌

1. Perez MV, Mahaffey KW, Hedlin H, et al. Large-scale assessment of a smartwatch to identify atrial fibrillation. N Engl J Med 2019;381:1909-17.

2. Lubitz SA, Faranesh AZ, Selvaggi C, Atlas SJ, McManus DD, Singer DE, et al. Detection of Atrial Fibrillation in a Large Population Using Wearable Devices: The Fitbit Heart Study. Circulation. 2022;146:1415-24.

3. 에릭 토폴. 청진기가 사라진 이후 (The Patient Will See You Now: The Future of Medicine Is in Your Hands). 청년의사.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