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배경으로 한 프로그램이 인기다. 한적한 시골집에서 하루 세끼를 지어 먹거나, 산속에서 캠핑을 하거나, 논밭에서 땀을 흘리며 일을 하는 연예인 출연자의 하루를 담는 등 종류도 내용도 다양하다. 너무 많은 프로그램이 나오다 보니 최근엔 오히려 식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또 새로운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걸 보면 이러한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은 아직 식지 않은 듯 하다. 산 속에서 혼자 사는, 이른바 자연인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은 첫 방영 후 십 년이 된 지금도 시청률이 높기로 손꼽힌다고 한다.
산에서 약초나 나물 캐고, 텃밭에서 채소 따고, 삼시세끼 해먹는, 어찌 보면 심심하고 재미없을 법한 내용으로 가득한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은 것은 도시를 떠나 자연과 가까운 곳으로 돌아가고픈 현대인의 욕망을 대리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이란,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겐 돌아가고픈 고향이며, 매일 콩나물 시루 버스나 지하철에 실려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에겐 힐링을 느끼는 대상이며, 아파트와 빌라촌에서 일상을 보내는 이들에겐 언젠가 살아보고 싶은 공간이다. 무엇보다 자연은 건강을 선사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각종 질병이 생겼다가 산 속에서 자연을 벗삼아 살면서 건강을 회복했다는 경험담은 자연인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에서 자주 등장하는 내러티브이다. 자연인이 숲에서 직접 채취하는 약초도 그가 건강을 회복하는 과정에 한몫 했던 것으로 그려진다.
자연을 가까이하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를 증명하는 연구 역시 차고 넘친다. 녹지가 많은 곳에 살수록 심혈관 질환, 비만, 당뇨, 천식으로 인한 입원, 심리적 스트레스, 나아가 사망 위험까지 줄어든다. 2만 명의 영국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일주일에 120분 이상을 공원, 숲, 해변 등 자연 속에서 보낸 사람들은 자연과 전혀 접하지 않은 이들에 비해 스스로 건강하고 삶에 대해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이 현저하게 높았다(그림). 집 근처에 녹지가 얼마나 많은지는 현재뿐 아니라 먼 미래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덴마크에서 90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어렸을 때 살았던 집 주변의 녹지 비율과 청소년, 성인이 되었을 때 정신 건강 사이의 관련성을 분석했는데, 녹지 비율이 가장 낮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가장 높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에 비해 정신 질환 발생률이 최대 55퍼센트 높았다. 이쯤 되면 도시에서 살면서 망가졌던 건강을 산에서 회복한 자연인의 이야기에도 나름 근거가 있는 셈이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낄 확률은 자연과 접하는 시간이 일주일에 120분에 이를 때까지 급격히 높아지고 200∼300분 이후부턴 차이가 없어진다. 가로축은 일주일 동안 자연과 접한 시간(분), 세로축은 건강하다고 느낄 확률. |
그러나 자연을 직접 가까이 할 여유가 없는 우리는 간접적으로나마 자연을 느끼려 한다. 마트에서 유기농 채소를 사고, 옷 가게에선 합성 섬유보다는 천연 섬유 옷을 고르고, 횟집에서도 양식보다는 자연산을 찾는다. 일반 채소보다 비싼 유기농 채소를 찾는 것은 농약이나 화학 비료와 같은 인공 물질을 쓰지 않아서 건강에 더 좋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영양 성분에 차이가 있다는 보고도 있다. 하지만 유기농 채소가 일반 채소보다 건강에 좋다는 과학적 근거는 빈약하다. 일반 당근이나 유기농 당근이나 당근은 그저 당근인 것이다. 농약의 성분이 건강에 좋을 리는 없겠지만 이는 잘 씻어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피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농사란 행위가 근본적으로 인공적인 것이다. 진정한 자연 식품만 골라 먹으려 한다면 원시 시대처럼 수렵 채집한 음식으로만 오롯이 식탁을 채워야 할 것이다. 영양실조에 걸릴 위험은 덤이다.
우리는 흔히 자연에서 얻은 천연 물질은 건강에 이롭고 안전한 반면, 인위적으로 합성한 것은 건강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반대의 예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백여 년 전 영국의 화학자 플레밍이 처음 발견해 페니실린이란 이름을 붙인 화학 물질은 패혈증으로 꼼짝없이 사망했을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인류가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처음으로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 것도 푸른곰팡이에서 추출한 페니실린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이후로 개발된 다양한 항생제는 인류의 수명을 비약적으로 늘렸다. 근래엔 항생제의 오남용과 내성 문제가 더 심각하게 대두되지만 의료 자원이 부족한 최빈국의 경우엔 항생제가 없어 사망하는 환자가 여전히 많다.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후원한 연구에서는 아프리카의 5세 미만 아이들에게 일 년에 두 번 경구 항생제를 주는 것만으로 사망을 13.5퍼센트 줄였다. 물론 모든 항생제는 공장에서 합성된 인공 물질이다. 하지만 패혈증이 왔을 때 옆에 항생제를 두고 염증 완화에 좋다는 약초를 달여먹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헬리코박터균을 발견한 공로로 2005년 노벨상을 수상한 배리 마셜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항생제를 투여함으로써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 그러나 항생제를 먹지 않아 죽은 사람은 부지기수다.”
항생제 못지 않게 인류의 수명을 연장시킨 인공 화합물은 또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만들어 최악의 전염병으로 손꼽히는 천연두를 박멸한 주인공은 백신이었다. 과거 미국에서 ‘죽음과 세금만큼 불가피한 것’이라고 할 정도로 흔했던 홍역 감염도 1960년대에 백신이 개발된 후 매년 수십만 건에서 수백 건으로 줄었다. 하지만 제조 과정에서 들어가는 화학 첨가물이 자폐와 같은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잘못된 학설이 퍼지면서 백신 접종이 감소했고, 그 결과 거의 사라졌던 홍역이 다시 활개를 치기도 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백신 반대론은 최근 유전자 재조합 방식인 코로나 백신을 두고 다시 부상했다. 백신 반대론에서도 합성물에 대한 불신과 자연에 대한 일방적인 짝사랑을 찾을 수 있다. 백신에 의한 면역과 자연 면역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제로섬이 아니지만, 합성 물질인 백신을 피하고 자연스럽게 병에 걸려 면역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백신 반대 운동과 자연 면역에 대한 맹신이 결합해 수두 파티(수두에 걸린 아이를 초대해 다른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수두에 걸리게 하는 것)같은 어이없는 사건을 일으키기도 한다.
천연 식품과 합성 식품은 또 어떤가. 천연 식품이라고 다 건강에 이롭지 않고 합성 식품이 무조건 해롭지도 않다. 적절한 허가를 받아 합성 식품에 들어가는 첨가물은 대부분 안전하다. 첨가물이 알레르기나 과민 반응을 일으킬 수 있지만 이는 견과류나 계란과 같은 천연 식품도 마찬가지이다. 천연 식품인 밥이나 과일도 너무 많이 먹으면 비만이 생길 수 있다. 당뇨병이 있어 설탕이 든 음식은 피하면서도 천연 꿀은 건강에 이로울 거라 생각하고 매일 먹어서 혈당이 높아진 환자도 종종 만난다. 꿀의 성분인 과당 역시 간에서 포도당으로 바뀌어 혈당을 높인다. 설탕보다 혈당을 천천히 올린다 해도 당뇨병 환자에게 장려할 음식은 아닌 것이다. 천연 빵, 천연 주스, 천연 비타민 등 천연이란 단어만 붙으면 질이 높고 건강에도 좋다는 느낌이 들지만 역시 근거는 빈약하며 대부분 마케팅의 영향을 받은 막연한 기대에 불과하다. 천연 식품이든 합성 식품이든, 무엇보다 과하지 않고 적당히 먹는 것이 좋다.
자연은 돈을 주고 살 수 없지만 먼 곳에 있지 않다. 앞에서 예로 든 영국의 연구에서 자연에 해당하는 환경은 숲, 강이나 해변, 시골 농장 등 외에 도심의 야산이나 공원도 포함되었다. 일주일에 두 시간만 가까운 공원이나 산에서 보내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는 것이다. 어느 도시에 살든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자.
참고문헌
* White MP, Alcock I, Grellier J, Wheeler BW, Hartig T, Warber SL, et al. Spending at least 120 minutes a week in nature is associated with good health and wellbeing. Sci Rep 2019;9:1–11.
* Engemann K, Pedersen CB, Arge L, Tsirogiannis C, Mortensen PB, Svenning JC. Residential green space in childhood is associated with lower risk of psychiatric disorders from adolescence into adulthood. Proc Natl Acad Sci U S A. 2019;116(11):518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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