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6일 월요일

저마다의 속도



아이는 본래부터 물을 무서워했다.


머리를 감을 때면 얼굴에 물이 흐르지 않을까 걱정하며 주먹을 꼭 쥐고 온몸에 힘을 주었다. 친구들과 욕조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다가도 물이 눈에 들어갔다고 자주 울음을 터뜨렸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워터파크에서 집에 가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물에 몸도 제대로 못 담그고 나올 때면 괜히 아이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다. 커가면서 예전처럼 욕조에서 울음을 터뜨리진 않고 유아용 풀에선 제법 놀 줄도 알게 되었지만, 가슴 깊이 정도의 풀 앞에선 늘 잔뜩 긴장을 했다.

따뜻한 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한 것은 마침 아내가 잠깐 일을 쉴 수 있게 되어서였지만,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와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처음 학부형이 되는 부모들이 으레 그렇겠지만, 우리도 앞으로 경험할 일들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었다. 초등학생이 되면 달라져야 한다고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는 통에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해외로 나가는 비행기를 탄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지난번엔 첫 날 리조트 수영장에 들어가지도 않겠다고 하던 아이가 막상 좀 적응이 되어 놀 만한 상태가 된 건 떠나기 전날이었다. 이제 좀 더 컸으니 작년보단 더 금방 적응해 놀거라 생각했다. 아니나다를까 아이는 물에 이전보다 빨리 친숙해졌다. 둘째 날이 되자 허리 깊이 키즈풀 안을 뛰어다녔다. 조금이라도 깊어보이는 곳엔 가까이 가지도 않았지만.

리조트 풀 가까이엔 해변이 있었고, 산호 바다 특성상 얕고 잔잔했다. 물이 맑아 바깥에서도 다리 옆을 헤엄치는 열대어들을 볼 수 있었다. 물고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신나할 것 같아 풀로 돌아와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 저기 옆에 바다에서 놀지 않을래? 

잠깐 망설이던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 저기 깊지도 않고 물고기도 많아. 

- 싫어. 난 여기서 놀래. 

어르고 달래기를 몇 차례 했지만 아이는 고집을 부렸다. 순간 열이 확 올랐다. 몇 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 겨우 아이들 풀에서 뭐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 아빠가 이렇게 여러번 이야기하면 좀 들어야지!

소리를 버럭 지르자 아이는 풀이 죽어 걸음을 옮겼다. 손을 붙잡고 바닷물에 들어와선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며 깊이를 확인하더니 안심한 얼굴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주변 얕은 바다엔 스노클링을 즐기는 아이들이 많았다. 내친김에 이번 기회에 우리 아이에게도 가르쳐보기로 했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노클링 장비를 빌려오는 길에 어느 아빠와 아이가 눈에 띄었다. 남자 아이가 우리 아이 또래여서 눈길이 갔나보다. 아빠가 아이를 물 위에 눕히려는 듯 했다. 물에 뜨는 법을 가르치려는 것이리라. 

여기 이렇게 누워봐. 
아빠한테 매달리지 말고. 아빠가 잡아준다니까. 
괜찮으니까 한 번만 해보라고. 

점점 커져가는 남자의 목소리엔 답답함과 짜증이 묻어있었고, 표정에선 아이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느껴졌다. 오늘 아이가 물에 뜨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일까. 그는 그순간 너무 앞서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사람은 누구나 아이가 겁에 질려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사람은 그 애의 아빠 뿐이었다. 

그날 아이에게 스노클링을 가르치는 것은 포기했다. 아이는 스노클링 대신 물안경을 쓴 채 코를 붙잡고 얼굴을 물에 담그어 물고기들을 보길 반복하며 한참을 놀았다. 겨우 몇 초쯤 수면 아래에 머물 뿐이었지만 아이는 잠수라도 한 듯 호들갑을 떨었다. 아빠, 봤어? 봤어? 저 물고기 말이야. 아이가 얼굴을 스스로 물에 담그며 노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스노클링은 언젠가 때가 되면 배우게 될 것이다. 아이가 저만의 속도로 천천히 커가고 있다는 것을 종종 잊는다. 내가 해야할 일은 아이의 옆에서 얼굴을 스치는 바람 소리를 함께 들어주는 것. 때론 너무 앞서가서 아이의 부름을 듣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기다려야 한다는 것. 

늦었지만 입학 축하해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