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7일 일요일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과 팔레스타인

밀그램 실험(Milgram Experiment)은 1961년 예일 대학교의 심리학과 조교수 스탠리 밀그램이 실시한 '권위에 대한 복종'에 대한 실험이다.
밀그램은 광고를 통해 기억력에 대한 실험에 참여할 사람들을 모집했다. 피실험자들에게는 4달러가 제공되었고, 이들을 교사와 학생으로 나누었다. 그러나 사실 학생 역할의 피실험자는 배우였다.
실험자는 교사 역할의 피실험자에게는 학생에게 테스트할 문제를, 학생 역할의 배우에게는 암기할 단어를 제시했다. 그리고 교사에게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15볼트부터 시작하여 450볼트까지 한번에 15볼트 씩 높여가며 전기 충격을 가하라고 지시했다. 실험자는 흰색 가운을 입고 전압을 올릴지 말지 고민하는 교사들에게 '실험의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며 전압을 올릴 것을 강요했다. 밀그램이 주시했던 것은 교사들이 전압을 높여가는 과정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였다.
실험을 시작하기 전 밀그램은 0.1% 정도의 사람들이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험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65%의 피실험자가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렸다.
실험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밀그램의 실험은 사람들이 파괴적인 권위에 굴복하는 이유가 성격보다 상황에 있고, 매우 설득력 있는 상황이 생기면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윤리적, 도덕적인 규칙을 무시하고 명령에 따라 가학적인 행위를 저지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내용 출처: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이미지: EBS 지식채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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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습에 대한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공습 자체보다도 가자 지구 폭격을 언덕 위에서 관전하는 이스라엘 국민들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이들을 악마라 욕하기는 참으로 쉽다. 개인적으로 든 의문은, 이들도 상식과 양심이 있는 사람들일텐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행동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더불어 이전까지 그저 어렴풋하게 알고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복잡한 문제를 좀더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만나게 된 이 책.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855214&start=slayer

어떤 이는 이 책마저도 지나치게 팔레스타인인 입장에서 쓰여졌다 할지도 모른다. 물론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설사 작가의 시각이 객관적이지 못하다 해도 이미 반대쪽으로 편향된 시각으로 가득찬 세계에서 그나마 균형을 유지하는데 충분히 보탬은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는동안 팔레스타인 역사에 대한 내 무지가 몹시 부끄러웠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상대적으로 소수자였던 팔레스타인 국민의 시각에서 역사를 기술해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또다른 미덕은, 팔레스타인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국민들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힌다는데 있다. 팔레스타인 국민의 아픔에 공감하며 순간순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감정이 격해질 때도 있었지만 책을 덮을 때쯤엔 스데롯 언덕에서 박수를 치며 폭격을 관전하는 이스라엘인들에 대해서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복잡하고 예민한 소재를 만화를 통해 담아내기로 한 작가의 선택은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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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은 권위 앞에서 개인의 도덕이나 믿음이 얼마나 유약한 것인지를 증명했다. 실험 안에서 권위는 흰 가운과 엄숙한 명령이었다. 현실에서의 권위는 상관이나 독재자와 같은 구체적인 개인일수도 있고, 집단이나 사회가 담고있는 가치와 같은 보다 간접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잃어버린 땅을 되찾는 것이 절대선이 되고 그에 반하는 것이 절대악이 되는 사회에서 개인의 보편적인 도덕률은 그 설 자리를 잃었다. 밀그램은 독일인들이 유대인들에게 행한 홀로코스트의 이면에 존재하는 이유를 탐구하고자 했지만 그의 실험은 현재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행하는 집단 살육의 이면을 이해하는 데에도 쓰일 수 있다.

단순히 그들의 도덕과 인간성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80년 광주 희생자들의 시신을 두고 홍어 말린다 조롱하는 이가 내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임을 우리 역시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고, 현상은 항상 단순하지 않으며, 문제의 해결은 이해에서부터 출발한다. 가자 지구의 사진과 외신을 접하고 조금이라도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면 이 책을 꼭 읽기를 권한다. 

2014년 7월 13일 일요일

고장 수리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공식 서비스센터는 매우 깔끔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긴 흰색 테이블에 칸막이 창구별로 배치된 직원들이 상담을 하고 있는 광경이 눈에 띄었다. 창구마다 놓인 작은 전광판은 수시로 띵동거리며 고객의 번호를 부르고 있었다. 대기인 수 일곱 명. 번호표를 뽑고 대기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차례를 기다렸다. 벽걸이 액정에서는 새 태블릿 모델의 홍보 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휴대폰 카메라 렌즈에 이상이 생긴 터였다. 사진 중앙에 실모양의 보라색 점이 선명하게 보였다. 먼지가 들어갔나 싶어 휴대폰을 두들기고 흔들어도 보았지만 점은 없어지지 않았고, 카메라 내부를 청소하면 해결되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서비스센터를 찾은 것이다. 십오분쯤 지났을까. 전광판에 내 손에 들린 종이쪽지의 번호가 떠올랐다. 담당 기사는 예의바른 미소와 말투로 빠르게 물었다.

- 어떤 문제가 있으신가요?

- 카메라에 보라색 점이 생겼는데 청소를 할 수 있을까 해서요. 

카메라 앱을 실행하고 액정과 렌즈 부분을 십여초쯤 살펴보았을까. 기사분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 이건 청소로 해결 안되겠네요. 그냥 폰을 교체하셔야 하는데 비용은 25만원입니다.

당황스러웠다. 카메라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정도의 비용을 들여야하다니. 카메라만을 수리하거나 교체할 수는 없는지 물었지만 역시 어렵다는 대답 뿐. 직원의 딱딱한 어투는 더 이상의 다른 질문을 거부하는 듯 느껴졌다.

- 사설 수리업체들도 있던데 그런 곳에서 해결할 수는 없는 문제일까요?

- 글쎄요. 그건 모르겠네요.

뭐 그런 질문을 하냐는 말투다. 괜한 질문을 했나 싶었다. 그 순간 직원의 얼굴에 잠깐 비친 표정은 난처함이었을까 귀찮음이었을까.

일분도 안되는 상담을 마치고 일어섰다. 직원은 처음의 예의바른 표정으로 돌아가 웃으며 공손히 인사를 했다.

나오는 길에 가까운 사설 수리업체를 검색했다. 가장 가까운 곳은 길 건너편 한 블럭 거리였고, 오피스텔을 개조한 작은 사무실을 사장이자 기사인 한 분이 지키고 있었다. 카메라 액정에 문제가 생겼음을 확인하고 교체하는 데 든 시간은 삼십분 가량. 오만원을 지불했다. 손놀림이 무척 꼼꼼한 분이였다. 수리는 깔끔하게 끝났고, 서비스는 만족스러웠다.

*

그날 따라 외래 환자의 표정이 무언가 불편해 보였다. 삼사개월에 한번씩 고혈압 약을 처방받아가시는, 항상 예의바르고 다소곳한 60대 여성분이었다. 가끔 실없는 농담으로 눙칠 때에도 한 손으로 입을 가리시고 호호호 하고 웃으시곤 했다.

처방을 끝내고 늘상 하던 질문을 던졌다.

- 뭐 더 궁금한 건 없으세요?

잠깐 망설이는 듯 하던 환자가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 지난 번에 보내주셨던 정형외과 말인데요...

그제서야 지난 번 진료 때 발바닥의 통증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던 것이 떠올랐다. 오래된 족저근막염이었다. 족저근막염 자체가 원체 쉽게 나아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법이다. 당시에 대기 환자가 많은 상황이어서 주사 치료를 할 여유는 없어보였다. 마음이 급해 별다른 처방 없이 족부를 보는 정형외과에 의뢰를 해 보내드렸던 것이다.

- 별다른 설명도 없고 그냥 보조기 하나를 주더라구요. 약도 처방했는데 소염진통제야 그전에도 여러 번 먹었지만 효과가 없었어요.

항상 차분했던 환자의 어투가 평소보다 높아지고 있었다.

- 원래 이 병이 아픈거니 별다른 방법 없다고. 선생님 말씀에 성의도 없고 다른 것보다 나는 많이 아픈데 그렇게 말씀하시는게 참 실망스럽데요. 보조기는 불편하기만 해서 한두번 하고 사용도 안했어요. 안되겠다 싶어 여기저기 주변에 알아보고 개인 병원에 갔지요.

순간 진땀이 났다. 다른 과로 의뢰를 했을 때 그 결과가 늘 좋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진료 과정에서 마음이 상한 환자의 이야길 들을 때면 의뢰를 한 입장에선 미안하고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 충격파 시술이라는게 있다고 하더라구요. 치료 받고 증상이 절반정도 좋아졌어요. 이제는 살 만하네요. 이런 치료 방법이 있는데 왜 안 알려줬는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그 병원에서 가르쳐준 스트레칭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어느새 예의 그 잔잔한 표정으로 돌아간 환자는 그래도 신경써주어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신다. 애초에 내가 뭐 해드린게 있다고. 그저 불편한게 나아져서 다행이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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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질병에 대한 치료법은 여러 가지이며, 대개는 근거와 효과가 확실한 치료를 우선시하게 된다. 하지만 당연스럽게도 치료에 대한 결과가 모두 좋지는 않다. 일차적인 치료법의 효과가 기대를 저버렸을 때, 상대적으로 근거가 덜 명확한 치료들 중 어떤 치료를 어느 정도까지 적용할 것인가는 정답이 없는 문제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내용을 설명했느냐 못지 않게 그것을 설명하는 방법과 태도가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당신이 이야기하는 문제를 공감한다는 것.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내가 도움을 주고싶다는 것.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종종 단어 그 자체보다 무성의 언어가 훨씬 더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다른 관계의 문제를 손보는데 있어서도 이것과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