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7일 토요일

문제는 호르몬

감성이 중요한 시대라지만 우는 남자가 환영받기란 어렵다. 박보검이나 송중기가 아닌 평범한 중년의 아재가 아무데서나 눈물을 보였다간 주접을 떤다거나 찌질하다는 핀잔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본래 눈물이 많은 편이었다. 책이나 드라마를 보며, 음악을 들으며 훌쩍거리는 일은 다반사였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면 그다지 슬픈 장면이 아님에도 흘러나오는 눈물에 주변의 눈치를 보며 민망함을 느낀 적도 많았다.

근래에 뜬금없이 눈물이 나 당황스러울 때가 많아진 건 호르몬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나이가 들면 남성호르몬은 줄고 여성호르몬이 늘어난다고 하니까. 지난 겨울, 아이들과 소파에 앉아 스노우보드 경기를 보는 중이었다. 하프파이프 끝에서 로켓처럼 튀어올라 몸을 몇 차례 비튼 뒤 곡예사처럼 우아하게 착지를 해대는 경이로운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런데 저 찬란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 순간 엉뚱하게도 코끝이 찡해져 헛기침을 하며 자리를 피했던 기억이 난다.

더 당황스러운 순간은 아이들을 나무랄 때이다. 아이들 앞에서 심각한 얼굴로 호통을 치는 찰나에 매번 눈물이 핑 돌아버리는데, 이럴 때면 아이들에게 들킬까 상황을 아내에게 맡기고 잠시 자리를 피했다 돌아와야 한다. 아이들에 대한 화는 잠깐이다. 처음의 기세등등하던 태도는 금새 사라지고, 감정을 이기지 못한데 대한 자괴감과 실망감이 해일처럼 밀려오곤 한다. 몇마디 훈계를 더해보긴 하지만 매번 경기는 결국 내 패배로 끝난다. 큰애는 예전과 달리 이제 아빠가 야단을 쳐도 여간해선 울지 않는데, 이쯤이면 그냥 패배가 아니라 콜드게임 패 정도인 셈이다.

4학년 아이들의 학예회 날이었다. 아이들은 머리만큼이나 큰 리본을 가슴에 달고 탬버린 춤을 추고, 양손에 든 깃발을 음악에 맞춰 돌려대고, 다양한 악기를 들고 합주를 하고, 수화를 응용한 율동을 하고, 스케치북을 한장한장 넘겨가며 카드섹션 무대를 만들었다. 아이들의 몸짓은 서툴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사실 무엇을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제작년보다 한뼘씩은 더 큰 아이들의 모습 자체만으로도 놀랍고 신비로웠다. 아이들 모두가 '자기 자신'에 성큼 더 가까워진 것처럼 보였다. 음악은 경쾌하고 아이들의 표정은 발랄했지만 이상하게 난 또 코끝이 시큰거렸다.

역시 호르몬이 문제인가 보다.